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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시사진단] 당신의 인권은 안녕하십니까

by 파스칼바이런 2021. 12. 20.

[시사진단] 당신의 인권은 안녕하십니까

(황필규, 가브리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가톨릭평화신문 2021.12.12 발행 [1641호]

 

 

 

 

매년 12월 첫째 주 인권 주일에 전국 곳곳에서 인권에 대해 미사 강론 봉사를 했었다. 아직도 일정은 비워둔다. 최근 몇 년간은 불러주는 성당이 없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강론을 하면 인권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나눌 수 있고, 강론을 한 성당의 특별헌금이 천주교인권위원회라는 인권 단체에 기부될 수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현대사회의 시대적 요청과 관심에 천주교회가 함께할 것을 선언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소외된 이들, 인권이 침해되는 이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성직자,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함께 인권현장을 누비며 활동하는 공동체다.

 

온갖 좋은 말의 홍수 속에 과연 우리는 어떤 사랑을 몸과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항상 자문해야 한다. 초등학교 때 한 신부님께서 강론 시간에 들려주셨던 시구가 잊히지 않는다.

 

“당신은 들판의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꽃을 꺾습니다.

 

당신은 날아가는 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새를 새장에 가둡니다.

 

당신은 연못 속의 물고기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물고기를 잡아먹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나는 두렵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우리도 다른 곳에서는 이방인이기에 이방인을 억압해서는 안 되고 우리 중 일부로 여겨야 하고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성경의 말씀은 현실이 아니다. 원래 닫힌 사회란 없다. 마냥 바쁘고 쫓기는 삶 속에 닫힌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막연한 불안감, 편견, 이기적인 발상으로 내치고 외면하는 우리의 나약한 모습,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에 매몰되어 버리는 비겁함이 있을 뿐이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슬퍼하고 분노할 줄 알며 그것을 몸과 마음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는 미사 중에 신자들이 바치는 기도의 단골손님이다. 우리에게 과연 ‘세계’는 어디고 ‘평화’는 무엇이며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기도’했는지, 생각하고 실천했는지를 묻게 된다. 반민주적 폭정, 소수민족 등에 대한 학살, 고문, 강제이주, 강제노동 등의 범죄가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있고 이들과 결탁한 일부 기업은 이윤만을 추구한다. 모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빵과 물고기’를 가지고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고,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기적’을 행하는 우리, 그 삶과 세계에 평화가 있을 리 없다. 겸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쳐야 한다.

 

어느 미국 목사의 강연 테이프의 내용이 생각난다. “한 원유 정제공장이 있다. 엄청난 양의 원유를 수많은 트럭이 싣고 그 공장으로 들어가지만 나오는 트럭은 모두 빈 트럭이다. 정제된 원유가 모두 그 공장을 가동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이다.” 우리 자신, 우리 가족, 우리 사회, 그리고 우리 교회가 스스로를 추스르기도 벅차서 혹은 벅차다는 핑계로 꿈과 나눔, 소중한 많은 것들을 잊으며 지내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사랑을 주지 않아도 될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고,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유한 사람도 없다.” 올해가 가기 전 작은 인권 실천 하나는 어떨는지. 천주교인권위원회와 같은 의미 있는 인권단체에 뜻깊은 기부도 좋고, 차가운 인권의 현장에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것도 좋다. 안녕하지 못한 인권, 우리에게는 늘 할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