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2021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최영일, 빈센치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가톨릭평화신문 2021.12.25 발행 [1643호]
이 연말 중국 매체들에는 한 할머니의 사망기사가 실렸다. 세계적으로도 화제가 되었는데 가장 오래 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정확한 출생연도가 확인되지 않아 비공인 기록으로 남았는데 중국에서의 추정은 1886년생으로 무려 135세라는 것이다. 몇 살 틀렸다고 해도 대단한 장수라는 점은 틀리지 않는다.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100년을 다 보고, 21세기도 1/5쯤 산 것이다. 이 할머니 기사를 보고 궁금한 것이 많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다른 나라의 할머니지만 묻고 싶은 질문이 많았다고 할까.
“할머니, 어느 시절이 살기에 가장 좋다고 느끼셨어요? 할머니, 어느 때가 가장 살기 힘들고 흉흉했나요?”
그걸 당신 할머니에게 물어보지그래? 하실 분도 계실 것이다. 그렇다. 필자의 할머니도 100세를 넘기진 못하셨지만 1902년에 태어나 1998년에 돌아가셨으니 4년 모자란 한 세기를 사셨다. 노후에는 맏손자가 이야기 들어주는 걸 가장 좋아하셨으니 구한말, 일제강점기, 6.25 피난 경험, 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 정권을 겪고, YSㆍDJ 정부까지 경험하신 것이다.
친할머니가 맏손자에게 기쁨과 고통의 경험을 왜 이야기해주지 않으셨으랴? 가장 힘들었던 때는 일제강점기로 좋은 학교에 다니던 사촌오빠들이 독립군과 내통한다고, 불온한 사상을 공부한다고 순사들에게 잡혀가 매질을 당하고 집에 왔을 때였다고 기억한다. 가장 기뻤던 순간은 떠나온 고향 이북, 한 우물이라는 동네에서 잔치할 때, 그리고 평양에서 모진 시집살이를 잠시 떠나 외국 선교사가 개설한 성경학교에서 몇 주간 한글도 배우고, 성경도 배우고, 무엇보다 또래 여학생들과 함께 생활한 시간이라며 평생 잊지 못하셨다.
중국 장수 할머니든 우리 할머니든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경험과 기억이다. 한 인간에게도 그것이 삶의 모든 것이지만 사회공동체 차원에서도 집단의 경험과 기억이 곧 역사이며 역사는 후대에 정보와 지식, 교훈과 지혜를 전달하고, 계승되기에 중요한 것이다.
초점을 손자녀들에게 옛날이야기에 섞어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던 할머니로부터 우리 자신에게 옮겨보자. 지금까지 살아온 당신의 삶, 그 속에 담긴 경험을 추리고 정리해야 한다. 우리가 의도했거나 아니거나,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여 살아남기 위한 취했던 행동의 성공과 실패, 그 궤적들을 복기해보며 그 안에서 의미들을 찾아내는 것이 핵심이고, 성찰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올해 2021년 한 해가 참으로 빠르게 흘렀다고 느낀다. 사실 연말에 돌이켜보면 화살처럼 흐르지 않은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늘 어떤 시기의 초반에는 시간은 더디고, 시기의 끝에는 후딱 흐른 느낌에 젖게 마련이니.
지난해 초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올해 내내 이어졌고,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선진국들의 백신 접종률에도 불구하고 꺼지기는커녕 ‘위드 코로나’와 함께 다시 폭증하고, 오미크론 변이의 감염력 강화에 걱정은 다 커지는 연말이다. 하지만 이 고난 속에서 당신은 어떤 기억을 올해의 경험으로 남길 것인가.
할머니가 옛이야기를 들여주시고 끝자락에 부르시던 노랫가락이 머릿속을 맴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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