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8) 시인 김해선(비비안나) 늦깎이 시인 김해선씨 “시 쓰고 다듬으며 성장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01.16 발행 [1646호]
▲ 김해선 시인은 작가를 꿈꿨지만, 결혼 후 출산과 육아로 꿈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을 쪼개 읽고 쓰기를 반복하고 학업을 이어가며 작가의 꿈을 이뤘다.
어린 시절 꿈 많고 매사에 자신감 넘쳤던 여성이 직장 생활을 거쳐 결혼하고 육아와 내조에 힘쓰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이름은 없어지고 아무개 엄마, 누구의 아내로 불린다. 요즘 들어 많은 어머니들이 단절된 경력을 딛고 과거에 못 이룬 꿈을 이루려 한다. 여유가 있다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로운 여행도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생각뿐 실제로 실천하기는 어려운데 실제 시도를 하는 통쾌한 주부시인이 있다. 뒤늦게 시인으로 등단하고 몇 달씩 외국에서 혼자의 삶을 통해 자아를 찾으려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다. 김해선(비비안나, 59) 시인. 지난 2021년 1월에 첫 시집 「중동 건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 가톨릭에 입교하게 된 동기는?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가톨릭 중ㆍ고등학교에 다녀 자연스럽게 종교적 분위기에 접하게 되었죠. 그런데 우리 집은 유교 문화가 강해 일요일에 성당에 가는 것이 몹시 어려웠죠. 친구들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는 것이 무척 부러웠어요. 드디어 고등학교 2학년 때 부활절 미사에서 영세했어요. 밤 미사가 끝나고 눈이 푸른 외국 신부님께서 직접 운전하셔서 친구들과 함께 집에 데려다 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 어릴 적 꿈은 무엇이셨나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시골이라 읽을 만한 책이 많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둘째 고모가 「소공녀」 책을 빌려다 주었는데 그 책이 닳도록 읽고 또 읽었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수업 후 매일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고 어둑해서 집으로 돌아갈 때 마음이 뿌듯했던 기억이 나요.
▶ 대학교 때 생활은 어떠셨나요?
대학 때 재수까지 했는데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지 못했어요. 그때가 제 인생에서 아주 위축되고 어둡고 우울한 시기였죠. 신춘문예에도 계속 도전했는데 번번이 떨어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마음에 좋은 글을 쓰는 것보다 신춘문예에 화려하게 등단하려는 욕망이 컸던 것 같아요.
▶ 결혼 후 늦게 대학원 공부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남편과 데이트할 때 문학 얘기도 많이 했고 비교적 빨리 결혼했어요. 결혼해도 저의 꿈을 밀어준다는 약속을 곧이곧대로 믿었지요. 물론 남편이 배신한 건 아니지만(웃음) 현실은 생각과 전혀 달랐어요. 아이 셋을 낳고 육아하면서 공부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했어요. 큰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막내가 유치원에 다니면서 비로소 오전 세 시간을 쓸 수 있었어요. 막내가 유치원에 가면 나는 매일 도서관으로 뛰어가 글쓰기를 했어요. 그런데 혼자서 읽고 쓰고 몇 년을 하다 보니 한계를 느끼며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 등단을 늦게 하신 편인데?
늦깎이 대학원생이 되면서 열심히 하면 적어도 석사과정이 끝나면 등단도 할 것으로 생각했어요. 신춘문예의 문을 계속 두드렸지만, 박사과정 졸업 때까지도 등단을 못 했어요. 17번 도전을 했는데 계속 떨어졌어요. 참담했죠, 우선 나 자신에게 실망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2015년 초여름 어느 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등단 소식을 들었어요. 저도 모르게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며 무릎을 꿇고 기도했어요. 저에게 문학은 지난한 시간과의 투쟁이었어요. 지금도 등단하지 못했다면 2022년 신춘문예에 또 도전했을 것 같아요.(웃음)
▶ 오랜 시간 외국 여행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주부로서 쉽지 않은 결정 아닌가요?
등단이 늦어지면서 우울감과 절망감에 빠졌지요. 그러다 문득 지금 여기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해 혼자 하는 여행을 선택했어요. 우선 연습 삼아 혼자 일본 나오시마를 여행했어요. 사실 처음이 어렵지 다음은 쉽잖아요. 그 후에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에서 40일, 프라하에서 15일을 보냈어요. 물론 가족이 도와주어 가능했지요. 늘 가족에게 감사해요. 2019년 12월 초에 혼자서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덴마크로 건너가 여행을 마치고 2020년 2월 말에 귀국했어요.
▶ 외국에서 홀로 한 여정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어느 것이든 아주 자세하게 계획적으로 생활했어요. 체코 체스키크룸로프에서는 시집 한 권을 정리할 생각을 가졌어요. 아침 6시에 일어나 기도하고 7시부터 12시까지 글쓰기에 집중했어요. 12시 이후엔 체스키크룸로프 마을을 마실 다니듯 꼼꼼히 살피고 다녔어요. 그러면서 에곤 실레 아트센터에 자주 들르게 되었는데 그러다 에곤 실레 생애와 작품에 빠져들었어요. 「에곤 실레를 사랑한다면, 한 번쯤 체스키크룸로프」라는 첫 산문집을 냈어요. 시인이 시집보다 산문집을 먼저 냈어요.(웃음) 그리고 매일 1000년 가까이 된 오래된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했는데 성당은 몹시 추웠지만 파이프 오르간의 연주를 듣는 순간은 추위를 잊을 정도로 행복했던 기억이 나요.
▶ 본당에서 봉사도 하시나요?
본당에서 빈첸시오회 활동을 했는데 한부모 가정과 홀몸노인 방문, 그리고 남부 교도소에 보호자가 없는 재소자분들에게 간식비 지급을 전달하는 아주 가벼운 심부름을 했어요. 그리고 가톨릭 영시니어 아카데미에서 ‘문학의 향기’, ‘삶과 문학’을 9년 이상 강의했어요.
▶ 시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저에게 ‘시’는 저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꾸 실패하는 시를 위해서 혼자서 장거리 여행을 하며 실패한 시를 다독이며 다시 쓰고 수정을 거듭했어요, 지금도 원고 청탁이 와도 쓰고, 오지 않아도 매일 잘 안 되는 시를 쓰고 수정하고 쓰고 있어요. 시는 저의 일상이라 할 수 있죠.
▶ 요즘 젊은 청년들, 인생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조언할 형편은 아닌 것 같은데(웃음) 저는 진부할 수 있지만 책 읽기를 권하고 싶어요. AI, 유튜브, 메타버스, 게임 등 재미있는 것들이 날로 발전하는 시대이지만 책에서도 재미와 중요함을 발견할 수 있지요. 나 개인의 독창성을 살리는 발전과 성장, 특히 창의성을 바란다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AI, 메타버스, 제페토 등 모두 창의성에서 개발되었고 발전되고 있잖아요.
▶ 가장 어려웠던 인생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저의 고통과 어려움엔 기도가 약이 되었지요. 등단 도전이 계속 실패하고 첫 시집 출간이 무산되었을 때 오랫동안 슬프고 우울했죠. 그때 집 근처 안양천 둑방길을 서너 시간 물병 하나를 들고 묵주기도를 하며 무작정 걸어요. 그러다 보면 성모님이 위로해주시는 것을 느끼게 되고 마음이 안정돼요.
▶ 이루고 싶은 미래의 꿈은 무엇인가요?
제가 이루고 싶은 꿈은 저의 미약한 시의 성장이에요. 어떻게 하면 나만의 시를 쓸 수 있을까, 나만의 새로운 시를 쓰는 것이 지금 저의 꿈이며 미래의 꿈이에요.
▶ 가장 즐겨하는 기도는 무엇인가요?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묵주기도와 십자가의 길 기도예요. 저녁기도에서는 성가(「야훼이레」 773번, ‘하느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를 천천히 읽거나 작게 소리로 노래합니다. 그리고 항상 성경(1코린 13,1~13, 갈라 3,3~10)을 통독합니다. 그 기도가 오늘날 저를 지탱해준 가장 큰 위로와 힘이에요.
우리는 누구나 꿈을 꾼다. 그러나 모두가 그 꿈을 실제로 실현하지는 못한다. 사실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다른 이에게 “그거 너무 늦은 것 아니야?” 하며 힘을 빼지는 않았나? 세상에 너무 늦은 것은 없다. 우리가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할 뿐이다. 늦었다는 시간은 결코 존재하지 않음을 김해선 시인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삶의 지혜이다. 김해선 시인은 오늘도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쓰고 또 쓴다. 그래서 그녀는 그저 감사하고 행복하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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