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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긴급 진단] 변형되고 왜곡된 성물 왜 등장하나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8.

[긴급 진단] 변형되고 왜곡된 성물 왜 등장하나

‘악마 묵주’와 ‘가짜 기적의 메달’ 성물로 둔갑… 유통과 사용 점검 필요

가톨릭평화신문 2022.01.16 발행 [1646호]

 

 

 

▲ 1 악마 묵주의 실제 모양. 예수님 모습이 불분명하고 'INRI' 대신 뱀의 형상이 자리하거나 십자가 끝이 오각형 형태를 띄고 있다.

 

 

주교회의가 이번에 판매와 사용에 주의를 요청한 성물은 ‘악마 묵주’와 ‘가짜 기적의 메달’이다. 이 가짜 성물들은 수년 전부터 국내외에서 문제가 된 것들로, 제작처와 출처도 불분명하다. 적지 않은 신자가 성물로 둔갑한 가짜 묵주와 기적의 메달을 축성 받아 기도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어, 사목자와 신자 개개인의 점검이 요구된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악마 묵주

 

‘플라스틱 묵주 목걸이’, ‘클래식 가톨릭 묵주’, ‘패션 쥬얼리’…. 국내 온라인 쇼핑몰과 포털에서 ‘플라스틱 묵주’를 검색하면 등장하는 형형색색의 묵주가 있다. 십자가와 묵주알 전체가 가벼운 플라스틱 재질로 제작됐으며, 다소 조잡한 형태를 띠고 있다. 교회가 사용 주의를 경고해온 악마 묵주(satanic rosary)이다. 묵주를 파는 업체들은 악마 묵주를 패션 소품 정도로 소개하고 있다. 100여 개씩 대량 판매도 한다. 1만 원에서 비싼 곳은 5~6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

 

악마 묵주는 해외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버젓이 팔리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중국의 유명 사이트에서는 국내보다 더 싼 가격에 악마 묵주를 판매하고 있다. 쇼핑몰에 소개된 업체들은 자신들이 만든 묵주가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 판매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에서 제작된 가짜 묵주가 국내에도 유통되는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교회와 성물에 관한 이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교회와 관련된 어떠한 설명도 없다. 하느님을 예배하기 위해 사용되는 거룩한 성물의 전통적인 표징과 상징은 왜곡된 채 마구잡이로 판매되는 사례다.

 

악마 묵주 구별법

 

일반인들이 악마 묵주를 패션 소품으로 인식하고 사용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가톨릭 신자들이 진짜 묵주로 오인하고, 축성을 받아 기도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6~7년 전부터 곳곳에서 등장하던 악마 묵주는 최근 다시 신자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 묵주가 이단들이 신성 모독을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경고하며, 사제들도 나서서 언론을 통해 강력히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악마 묵주는 십자가 상 예수님 모습이 뚜렷하지 않은 게 특징이다. 예수님 머리 위에 INRI(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예수) 표지는 없고, 유혹하는 자의 표상인 뱀의 머리가 새겨져 있는 등 엉터리다. 심지어 십자 나무 가장자리는 우상숭배를 상징하는 오각형이며, 안에는 태양 광선이 새겨져 있다.

 

기적의 메달

 

‘기적의 메달’은 19세기 프랑스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1806~1876년) 수녀가 만든 성물이다. 성모 마리아는 프랑스 파리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에 입회해 교육받던 라부레 수녀에게 총 3차례 발현했으며, 1830년 11월 27일 두 번째 발현 때 자신의 모습대로 메달을 제작할 것을 직접 당부하셨다. “이 모형으로 메달을 만들어라. 이 메달을 거는 사람들은 큰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신뢰심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한없는 은총이 내릴 것이다.”

 

이를 보고받은 파리 교회는 메달 제작을 공식적으로 허락했다. 1832년 처음 메달이 주조됐으며, 이후 성모님 말씀대로 메달을 지니고 열심히 기도한 이들에게 많은 치유와 회개가 이뤄지면서 ‘기적의 메달’로 불리게 됐다.

 

특별히 주의 기울여 살펴야 할 기적의 메달

 

기적의 메달은 많은 가톨릭 신자가 묵주와 함께 소지하고 있는 대표적 성물이다. 가톨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인 성모신심을 드러내는 징표로 여겨진다. 묵주에 함께 걸기도 하고, 목걸이처럼 착용하기도 한다.

 

가짜 기적의 메달을 구별해내기가 쉽지는 않다. 워낙 변형된 모양이 다양한 데다, 막상 육안으로 분간하기 어려운 것도 많다.

 

기적의 메달 앞면 성모 마리아는 죄를 상징하는 뱀을 밟고 두 팔을 벌리고 있다. 성모님 손에서 빛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은 은총을 상징한다. 성모님 주위 둘레는 프랑스어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성모님께 의탁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O MARIE CONUE SANS PECHE PRIEZ POUR NOUS QUI AVONS RECOURS A VOUS)가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알파벳 M이 십자가의 받침을 꿰고 있으며, 알파벳 아래에는 가시관을 쓴 심장(예수 성심)과 칼에 찔린 심장(성모 성심)이 있고, 십자가와 성심 둘레에 12개의 오각형 별이 좌우 대칭으로 놓여 있다.

 

변형된 형태의 기적의 메달은 전 세계에 많이 퍼져 있다. 디자인을 도용해 보석류로 판매하는 경우도 많다. 성모님 얼굴이 변형 및 훼손돼 있거나, 양쪽 대칭을 이뤄야 할 별이 비대칭이거나 육각형인 것도 있다. 성모님 발아래 적힌 발현 연도가 ‘1830’이 아니라, ‘1850’으로 오기된 것도 있다. 뒷면의 십자가와 알파벳 M이 겹쳐진 모양이 다르거나, 성심 형상에 가시관과 칼이 없는 것도 있다.

 

진짜 기적의 메달은 파리 뤼드박의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모원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눈에 띄게 변형된 것은 모두 유사품이다. 그러나 심한 훼손을 제외하고, 알아보기 힘든 정도의 변형이 있는 기적의 메달이 많아 어디까지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지 기준 마련은 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측은 “이번 계기로 본래 기적의 메달이 신자들에게 알려진 것만으로도 큰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라 여긴다”면서 기적의 메달과 관련해 진위가 궁금한 경우,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010-6625-0927)에 문의해도 된다고 전했다.

 

변형된 성물 유통과 사용 모두 재점검해야

 

주교회의는 “성물은 장식품이나 장신구가 아니라 신심 행위와 신앙 증진을 돕는 물건이기에, 성물에 표현된 상징들은 가톨릭교회가 공인한 교리와 전승에 부합해야 한다”면서 “성물을 구입할 때에는 되도록 제작처나 판매처가 분명한 것을 선택하고, 의문이 있을 때엔 성직자, 수도자 등 교회 전문가들에게 문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 김기태 신부는 “교회 내 성물 판매소와 본당 성물방 또한 성물 유통 과정이나 변형된 성물은 없는지 재차 점검해 신자들의 신심생활을 돕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그동안 그릇된 성물로 기도를 바쳤다고 해서 기도의 효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잘못된 성물을 발견했다면 축성 받은 것이라도 본래 기도의 도구로서 거룩한 가치를 상실한 것이기에 그냥 폐기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