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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서영택 시인 / 고구마 스윙댄스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6.

서영택 시인 / 고구마 스윙댄스

 

 

긴 겨울밤에는 둥근 시간도 늘어난다

사랑방에 모인 그림자들도 길게 누웠다

 

우린 마음이 고프면 날고구마를 먹었다

가마니에 쓱쓱 문지르면 서로 바라보는 눈빛이 빛났고

얼었던 저녁의 냉기마저 벗겨졌다

 

아궁이에 고구마를 던져 익힌다 고구마는 위쪽이 아래쪽보다 잘 익는다 그래서 잘 뒤집어야 한다 인생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내가 태운 숯검정의 감정과 다디단 추억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길거리 군고구마 장사를 만나면 묻고 싶다

 

나무하러 갈 때도 고구마를 가지고 가 젊음의 허기를 때웠다 3년 동안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중학교 친구 병두는 등교할 때 고구마를 숨겨두고 하교할 때 찾아 먹었다고 한다

 

잘 익은 고구마를 살짝 비틀면 노란 속살이 내보인다 그 안에 할머니의 인자한 미소와 할아버지의 호통 소리가 들어있다 우린 호호 불어가며 다가올 뜨거운 미래를 열어보곤 했다

 

방안에는 고구마가 쌓여가고 고구마 닮은 얼굴들이 익어간다

춤을 추던 눈발이 누군가의 발자국을 조용히 따라가고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따뜻하고 빛나는 이야기가

뜨거운 노래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웹진 『시인광장』 2022년 2월호 발표​

 

 


 

서영택 시인

경남 마산에서 출생. 2011년《시산맥》으로 등단. 시집으로『현동381번지』(한국문연, 2013)와『돌 속의 울음』(서정시학, 2020)이 있음. 2020년 문학 나늄 도서선정. 조지훈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