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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명옥 시인 / 대못을 빼고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7.

안명옥 시인 / 대못을 빼고

 

 

아파트 개발로 떠나버린 공장들안에는

누군가 밤새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쌓여만 가고

번창과 폐허를 한꺼번에 경험한 공장 지대

유령처럼 개들이 떠돌고

 

물러서지 않는 코로나19처럼

골목 한쪽 길가에 주차한 차들이 점령한 오후

물러서지 않는 5톤 화물차와 자동차가 대적하고

 

오미크론 위험 수위로 오지 않는 견적문의

쏟아 붓는 광고비를 떠안고 굴러가는 하루

툭하면 제작사고 디자인사고 무수한 균열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버티는 공장 간판

 

추위를 견디는 일이 많이 익숙해지고

부고 소식이 전해지는 오후

수의는 주머니가 없다고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고

 

창문이 어둑해질 때

희망의 타이어에 대못이 박히던 퇴근길

공장지대에 캄캄한 밤이 오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대못을 빼내는 동안 안부를 묻는다

 

힘들지요?

잘 견디고 늘 좋은 시를 생각하세요

이렇게 지나가는 거지요

 

청년취업 대책 없어

부모세대 연장근무 늘어난다는 데

새들은 저녁이면 떼로 어디론가 날아가고

마스크 쓴 유령들이 운전석에 앉아 어디론가 달려가고

 

하나둘 밝혀지는 아파트 불빛 젤 늦게 꺼지고

새벽이면 젤 먼저 켜지는 우리 집 형광등

 

웹진 『시인광장』 2022년 2월호 발표

 

 


 

안명옥 시인

2002년 《시와 시학》 봄호로 등단. 성균관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시집으로 『칼』과 『뜨거운 자작나무숲』과 『달콤한 호흡』 출간. 서사시집 『소서노召西奴』, 장편  서사시집 『나, 진성은 신라의 왕이다』 출간. 창작동화 『강감찬과 납작코 오빛나』, 동화 『금방울전』 『파한집과 보한집』, 역사동화 『고려사』 ( 주니어 김영사 출판사에서 4권의 동화를 출간함). 성균문학상, 바움문학상 작품상, 만해 ‘님’ 시인상 우수상, 김구용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