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주일에 만난 사람] 한국외방선교회 유동진 신부 회사 다닐 땐 못 느낀 행복… “사제의 길 걸으며 만끽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05.08 발행 [1661호]
▲ 유동진 신부는 사제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뒤부터는 하느님께서 모든 걸 다 마련해주시는 걸 느꼈다고 했다. 하느님 앞에 모든 걸 내려놓고 맡긴 뒤 그의 삶을 하루하루 은총이고 기쁨이었다.
돌아보니 모든 순간이 은총이고 기쁨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느님께서 불러주시고 마련해주신 길이었으니까. 그렇다고 꽃길만 펼쳐진 건 아니었다.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할 것 같아 괴로웠고, 낯선 선교지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답답했다. 하지만 그분은 늘 함께 계셨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다. 이제는 안다. 선하신 하느님께선 나를 도구로 쓰고 계시고, 나는 그저 그분이 마련해 주신 일을 하면 된다는 것을. 성소주일을 맞아 멕시코에서 선교하는 한국외방선교회 유동진(라파엘) 신부를 만났다. 휴가차 한국에 온 유 신부는 25일 출국 예정이다.
“제가 말이 엄청 많아요.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또 조금 오지랖이에요. 여기 명동에 올 때 지하철 타고 왔거든요. 근데 건너편에 앉은 아주머니가 묵주를 들고 열심히 기도하시는 거예요. 너무 반갑고 고마웠어요. 그래서 제가 내릴 때 말을 걸었어요. 제가 멕시코에서 온 신분데요 하면서요. 그리고는 묵주기도 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고 말씀드리고 멕시코에서 챙겨온 과달루페 성모님 패를 드리고 왔어요. 하하하하. 저 웃기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라
유 신부에게선 기분 좋은 에너지가 넘쳐 흘렀다. “원래 이렇지 않았어요. 되게 어두웠어요. 사람에게 집착하고 혼자 상처받고 그랬어요. 사람들과 관계 맺기가 힘들어서 신학교에서도 나오려고 했어요. 사제가 될 순 없겠다 싶었죠. 하느님과 관계 맺기도 힘들었으니까요.”
그는 심리상담을 받고 어린 시절 내면의 아이와 마주할 수 있었다. 어머니를 일찍 잃고 힘들어하는 꼬마를 발견했다. 상담을 통해 비로소 어린 시절의 자신을 스스로 위로할 수 있었다. 상담사는 “원래 지녔던 좋은 것들이 주변 환경에 가려져 있었던 것”이라며 “자신이 좋은 사람이란 것을 믿고 사랑해줬으면 한다”고 조언해줬다.
“제가 겪은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된 계기였어요. 하느님께 제 부족함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맡길 수 있게 됐고요. 그때부터 완전히 밝은 성격이 됐죠. 친구들이 저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하하.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는 힘들었던 시간을 털어놓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충만하면 충만한 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하느님께 다가갔다. 그는 당시 만난 상담사를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라고 생각한다. 그때뿐만이 아니다. 성소 여정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천사들이 나타나 방황하던 그에게 길을 알려줬고,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워줬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기도를 보태줬다.
“언젠가부터 제 주변에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천사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하느님께서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하느님 안에서 사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구나를 깨달았고요.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던 저를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셨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 유동진 신부가 2015년 사제서품식 후 꽃다발을 들고 축하를 받고 있다. 유동진 신부가 2015년 사제서품식 후 꽃다발을 들고 축하를 받고 있다.
직장 생활 하다가 신학대 입학
유 신부는 2015년 사제품을 받았다. 함께 사제가 된 동기들과는 10년 정도 나이 차이가 난다.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신학대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세례는 군대에 있을 때 받았다.
“대구에서 살았는데 제가 살던 동네엔 성당이 없었어요. 집안 식구 중 신자인 사람도 아무도 없고요. 그런데도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난 신부가 돼야지’라고 생각했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신기해요. 왜 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까 하고요.”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서울에 가톨릭대 신학대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학교에 직접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하면 입학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자격 조건이 되지 않았다. 신자가 아니어서다. 이 길은 아닌가 싶었다. 끊어진 듯한 성소의 길은 직장을 다니다 군대에서 예비자 교리를 가르쳐 준 수녀를 다시 만나면서 이어졌다. 그리곤 한국외방선교회 성소 모임을 통해 신학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도 두 번 떨어졌어요. 직장에선 승진도 안 됐고요. 제 인생에서 뭐가 잘 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고 신부가 돼야겠다고 마음먹고부터는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을 만나더라고요. 하루하루가 신비였고 기쁨이었어요. 신학교 입학 첫날밤도 생생해요.”
대학생 때 서울에 터를 잡은 그는 창문이 큰 넓은 집을 사는 게 꿈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하 단칸방에서 살다 직장에 다니면서 돈을 모아 지상 원룸으로 이사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런데 신학교 첫날 기숙사에서 자고 일어나는데 널찍한 창문에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아, 하느님, 제게 이렇게 집을 주시는군요.’ 벅차오르는 그때의 감정은 잊을 수가 없다.
그는 부제품 받기 전 필리핀으로 선교 실습을 떠났다.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막상 말도 안 통하는 낯선 선교지에 가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열정만 앞섰던 신학생 눈에 현지에서 사목하는 선배 신부들은 타성에 젖어 보였다. 내가 지닌 기쁨을 전하지 못했고, 뭔가 이루지 못했다는 걸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자 그곳 아이들이 편지를 주더라고요. 제가 함께 있어줘서 고맙고, 덕분에 하느님께서 계신다는 걸 느꼈다는 거예요. 저를 보면서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배웠다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아무것도 못 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느님께선 항상 함께 계시면서 정말 많은 일을 하고 계셨더라고요. 내가 그분께 머물러 있기만 하면 그분께선 다 이루신다는 걸 깨달았죠. 이 체험은 제가 어떤 상황이든 견딜 수 있는 원천이 됐어요.”
▲ 멕시코에서 미사 후 신자들과 함께 셀카를 찍는 유동진 신부.
멕시코 선교 어려워도 여유롭게 느긋이
한국외방선교회 사제들은 파견된 선교지에서 평생을 보낸다. 그는 2015년 11월 멕시코에 도착했다. 더운 날씨와 현지 음식엔 그럭저럭 적응했고, 스페인어도 늘어가는 중이다. 다만, 멕시코 특유의 문화와 신심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멕시코가 아즈텍과 마야 문명의 후손들이 사는 곳이거든요. 다신교 문화의 뿌리가 그대로 남아있어요. 기복적인 신심도 강하고요. 악몽을 꿨다고 집에 성수를 뿌려달라 하기도 하고, 돈다발을 들고 와 축복해 달라고도 해요. 유다 타대오 성인은 돈을 많이 벌어주는 성인이라면서 마약 카르텔들이 수호성인으로 모신다니까요.”
멕시코 신부와 한 본당을 맡고 있는데 본당에 속한 공소가 서른 곳 가까이 된다. 매일 운전하며 미사를 집전하러 공소를 다니는 게 일이다. 경제적 상황은 열악하지만 여유롭고 느긋한 마음으로 하루를 즐겁게 사는 멕시코 신자들을 보면서 그도 조급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곳에선 공소나 성당이 필요하면 신자들이 직접 지어요. 성당을 짓는 데 걸리는 시간은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돈이 모이면 벽돌 하나 놓고 그래요. 삶이 준비하고 계획한 대로 다 되는 게 아니잖아요. 하느님께 모든 걸 맡기고, 그분 뜻을 따라가면 되더라고요. 물론 힘들 때도 있죠. 그런데 그때도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걸 이젠 아니까요.”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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