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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허홍구 시인 / 차마 울지 못하네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11.

허홍구 시인 / 차마 울지 못하네

 

 

태국 파타야

민속마을에 코끼리 쇼

누가 재미있다 했는가?

 

철없는 아이들과

생각 없는 구경꾼들 빼고는

모두가 안타까운 표정이다

큰 덩치에 작은 네 눈을 마주하면

다 하지 못한 말 읽을 수 있네

다 하지 못한 눈물 담겨있네

 

차마 울지 못하는 너

차마 웃지 못하는 나.

 


 

허홍구 시인 / 작은 고개, 큰 고개

 

 

동촌에서 시내로 들어서자면

아양교를 건너

작은 고개 큰 고개를 넘어야 했다

 

손수레에 능금상자 가득 싣고

칠성시장 난전으로 이글던

어머니의 새벽 장삿길

그 뒤를 따라

손수레를 밀면서

신문 배달 나서던 중학 시절나의 힘들었던 고갯길

 

오늘도 우리가 꼭 넘어서야 하는

다리 건너 작은 고개와 큰 고개.

 


 

허홍구 시인 / 잡초

 

 

흔한 놈이라 하여 함부로 말하지 말라

인연 따라 아무 곳에 발붙이고 살아도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이름은 아니다

 

무지렁이처럼 서로가 엉켜 있어도

더불어 살아가자 한 죄밖에 없으리라

 

하나 분명한 것은

누군가의 손에 길들여지고 가꾸어지는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라는 말이며

그러니 스스로 무릎 끓고 머리 숙이는

부끄러운 백성이 아니라는 말이다

 

풀 잎으로 밟히고 쓰러졌다가도

그 땅 짚고 일어설 줄 아는 무성한 잡초

제 영혼의 주인으로 살고자 목숨을 걸었다.

 

 


 

허홍구 시인

1946년 대구 출생. 수필가. 국제 PEN 클럽,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집 <사랑 하나에 지옥 하나 (혜화당 96년)> <네 눈으로 나를 본다 (도서출판 대일 98년)> <내 니 마음 다 안다 (도서출판 솟대 2001년)> 수필집 <손을 아니 잡아도 팔이 저려옵니다 (도서출판 대일 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