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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구순희 시인 / 밥이 질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11.
제목 없음

구순희 시인 / 밥이 질다

 

 

오늘 비 왔지

밥이 질다 말하지 않고

비 와서 넉넉히 물 부었다고

야단 한번 안 치고 웃음으로

소리없이 꾸짖는 뼛속의 말씀으로

 

울컥, 화내고 싶을 때도

찬찬하신 그 말씀

왜 단번에 해내지 못하고

그 길이 더딘지 묻지도 못하고

비오지 않아도 물먹는 마음

온몸이 젖어 밥이 질다

 

 


 

 

구순희 시인 / 상념에서 사념으로 2

 

 

잠시나마 열탕에서 얼마나 곤두박질쳤는지

타기 직전에 가까스로 해방된 노른자는

온통 멍 자국이다

 

푸르뎅뎅한 단백질이 퇴로를 차단당하고

목구멍에 달라붙어 캑캑거릴 때도

 

줄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머릿속은

아직도 닭이 되지 못한

삶은 달걀에서

샛노랗고 당찬 병아리를 그려보는 헛수고라니

 

조금 전 읽다 만 슬픈 이야기에

시간을 놓치고

하루에도 열두 번 지었다 허무는 기와집 생각으로

눈으로 입으로 제 맛을 놓친 후에도

상념에서 사념으로 오가느라 여전히 분주했다

 

 


 

구순희 시인

1952년 경남 양산에서 출생. 1981년 《현대시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그대 내게로 와서』, 『내 안의 가장 큰 적』, 『수탉에게 묻고 싶다』. 『누군가를 만날 것 같다』, 『군사 우편』이 있음. 최근 『시산맥』 출판사의 『내려놓지마』를 출간. 200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개인 창작집 발간 지원금 수혜. 2011년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활성화 기금 수혜.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