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범 시인 / 월곡에서 돌아온 - 다락 김
멍든 누나가 돌아왔다 손톱 얌전한 고양이라도 다 지나갈 때까지 누구도 삼키지 않는 정든 골목에 서 있었다고 한다 일단 안심시키기 좋은 얼굴을 발명하고서 누나가 국밥으로 내장과 기억을 다 씻기까지 취객처럼 아버지는 화분을 노려봤다
그날부터 안방에선 조카가, 앞마당에선 날지 않는 까치가 월곡, 월곡, 뛰어다녔다
아침 혼잣말에 찬물을 다 끼얹으면 새파란 영혼이 되는 누나 열다섯 무렵의 서랍에 처음 보는 욕을 쟁이면서 그렇게 오후가 목적이라는 듯 숨을 쉬었다
조카는 거실 액자 아래에서 아직도 딴딴따단, 딴딴따단 지금 오래된 샹들리에를 찔러대는 것은 무엇인가 그때마다 액자 속 남녀는 중국 인형처럼 다시 웃었다, 믿음대로 사랑이 오는 길 끝에 다락방이 있었다
오늘도 십자가 아래 간판은 참사랑, 한사랑, 온사랑, 새사랑, 다사랑인데, 그 시절 손잡이 없는 거울에서 나쁜 연애들이 태어났다, 영혼이 마른다는 누나를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늙은 고양이는 굴리기 좋은 다짐을 두르고 일찍 잠든다
어느 호수에선 틀림없이 변사체가 발견될 것이다
계간 『시인수첩』 2021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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