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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옥주 시인 / 폭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16.

고옥주 시인 / 폭포

 

 

떨어져 내려도 희망이다

절망의 힘도 이렇게 크면 희망이 된다

비명도 없이 곤두박질 치다보면

딛고 섰던 땅까지 움푹 파지지만

그보다 더 세찬 무엇이

생명을 받들고 위로 솟구치고야 만다

수직의 절망이 수평의 희망으로

튕겨 흐르는 숨막힘

 

 


 

 

고옥주 시인 / 눈올 때 잠깐

 

 

도시를 슬로우 비디오로 만드는 눈.

바라보면 날아올라 구름에 달라붙고

눈 돌리면 슬금슬금 물방울에 쌓이는

눈.

길들은 지익지익 소리를 내며

이해할 수 없이 아득해지고

사람들의 내부 회로에

눈송이 하나가 내려앉자마자

일상의 톱니바퀴가 툭 불거지면서

느릿느릿 흐르는 물

잠시 손을 놓는 뼈

뼈를 이탈하는 너울이 늘어져 질질 끌리다가

뒷부분이 검게 물들고 잘라져 나가는

잠깐,

망가진 채로 나는

드디어 내 몸을 벗어났다

나뭇잎 훌훌 털어 제몸 벗어나는 나무처럼.

 

 


 

고옥주 시인

서울 출생.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 1988년 『문학정신』 등단. 시집: 『나무나무』 『알의 힘』 『다시 목련』 『제비꽃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