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송종찬 시인 / 눈의 묵시록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22.

송종찬 시인 / 눈의 묵시록

 

 

갈 데까지 간 사랑은 아름답다

잔해가 없다

그곳이 하늘 끝이라도

사막의 한가은데라도

끝끝내 돌아와

가장 낮은 곳에서 점자처럼 빛난다

눈이 따스한 것은

모든 것을 다 태웠기 때문

눈이 빛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기 때문

촛불을 켜고

눈의 점자를 읽는 밤

눈이 내리는 날에는 연애도

전쟁도 멈춰야 한다

상점도 공장도 문을 닫고

신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성체를 받듯 두 눈을 감고

혀를 내밀어보면

뼈 속까지 드러나는 과거

갈 데까지 간 사랑은

흔적이 없다

 

 


 

 

송종찬 시인 / 울컥

 

 

겨울나무가 얼어 죽지 않으려면

울컥하는 것이 있어야겠다

마룻바닥에 울리는 통성기도나

남몰래 흘리는 눈물 같은 것들이

뿌리에서 가지 끝까지 밀고 올라야겠다

눈과 눈이 고사리손을 마주잡고

빈 들을 건너가는 겨울밤을 나려면

울컥하는 것들이 있어야겠다

다시 볼 수 없는 북방의 여인이나

갈 수 없는 설움들이 목울대까지 차올라

얼굴에는 신열이 올라야겠다

빈 겨울들에는 바람이 들이치고

쓰러지는 겨울나무들이여

 

 


 

송종찬 시인

1966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 전주에서 성장. 1992년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졸업. 1993년 <시문학>에 「내가 사랑한 겨울나무」외 9편으로 작품활동 시작. 1999년 시집 <그리운 막차>. 2007년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