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찬 시인 / 눈의 묵시록
갈 데까지 간 사랑은 아름답다 잔해가 없다 그곳이 하늘 끝이라도 사막의 한가은데라도 끝끝내 돌아와 가장 낮은 곳에서 점자처럼 빛난다 눈이 따스한 것은 모든 것을 다 태웠기 때문 눈이 빛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기 때문 촛불을 켜고 눈의 점자를 읽는 밤 눈이 내리는 날에는 연애도 전쟁도 멈춰야 한다 상점도 공장도 문을 닫고 신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성체를 받듯 두 눈을 감고 혀를 내밀어보면 뼈 속까지 드러나는 과거 갈 데까지 간 사랑은 흔적이 없다
송종찬 시인 / 울컥
겨울나무가 얼어 죽지 않으려면 울컥하는 것이 있어야겠다 마룻바닥에 울리는 통성기도나 남몰래 흘리는 눈물 같은 것들이 뿌리에서 가지 끝까지 밀고 올라야겠다 눈과 눈이 고사리손을 마주잡고 빈 들을 건너가는 겨울밤을 나려면 울컥하는 것들이 있어야겠다 다시 볼 수 없는 북방의 여인이나 갈 수 없는 설움들이 목울대까지 차올라 얼굴에는 신열이 올라야겠다 빈 겨울들에는 바람이 들이치고 쓰러지는 겨울나무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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