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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준경 시인 / 늑대와 시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24.

윤준경 시인 / 늑대와 시를

 

 

오늘밤

늑대와

시를 이야기하려 해

 

왜 웃어?

 

그대는 죽도록

한 여자만을 사랑할 수 있겠어?

 

아내가 먼저 가면

평생 혼자 살다가

아내 무덤에 같이 묻힐 수 있겠어?

 

약속을 천금보다 중히 여기는 늑대

결코 남을 먼저 해치지 않는 늑대

 

내가 그때

늑대와 결혼하지 않은 걸

후회하는 이유야

 

 


 

 

윤준경 시인 / 은행나무 연가

 

 

우리 집 은행나무는 혼자였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짝이 없던 은행나무는

연못 속에서 짝을 찾았다

그것이 제 그림자인 줄 모르고

물속에서 눈이 맞은 은행나무

 

물에 비친 제 그림자에 몸을 포개고

만 명도 넘게 아기를 가졌다

물방개는 망을 보고

연잎은 신방을 지켜 주었다

 

해마다 가지 사이에 돌멩이를 얹고

그림자에게 시집간 은행나무

한 가마니씩 은행이 나와도

그것이 그리움의 사리인 줄 몰랐다

 

바람이 세게 불 때마다

연못이 걱정되는 은행나무는

날마다 그쪽으로 잎을 날려 보내더니

살얼음이 연못을 덮쳤을 때 은행잎은,

 

연못을 꼭 안은 채 얼어 있었다

 

 


 

윤준경 시인

경기도 양주 출생. 서라벌예대 방송과 졸업. 서울방송통신대 교육학과 졸업. 1994년 『한맥문학』 신인상 수상. 우이동시낭송회 회원. 한국시인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회원. 한국가곡작사가협회회원. 시집 <시와 연애의 무용론> <나 그래도 꽤 괜찮은 여잡니다> <1999년 우이동사람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