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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채봉 시인 / 나그네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9.

정채봉 시인 / 나그네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다

함께 있어도 함께 있고 싶다

떠나지 않아도 떠나온 것 같은

해질 무렵

 

 


 

 

정채봉 시인 / 알

 

 

지구는 알이다

사랑이 낳은

그래서 모든 사랑의 알들은

둥글다

지구처럼

 

 


 

 

정채봉 시인 / 흰구름

 

 

오는 줄 모르고

오고

가는 줄 모르고

가고

천천히

바래어져 버린

나의 사랑

 

 


 

 

정채봉 시인 / 인연

 

 

나는 없어져도 좋다

너는 행복하여라

없어진 것도 아닌

행복한 것도 아닌

너와 나는 다시 약속한다

나는 없어져도 좋다

너는 행복하여라

 

 


 

 

정채봉 시인 / 중환자실에서

 

 

탁자 위

맑은 유리컵에 담긴

물이 자꾸 먹고 싶어

입을 벌리다가

나는 내 육신이 불쌍해졌다

주인을 잘못 만나

이 무슨 고생인가

나는 내 육신에게 진정 사과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정채봉 시인(1946~2001)

1946년 전남 순천 출생. (아동문학가).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꽃다발'로 당선. 대한민국문학상, 새싹문학상, 동국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동화집 <물에서 나온 새>가 독일에서, <오세암>은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 동화작가, 방송프로그램 진행자, 동국대 국문과 겸임교수로 활동하던 1998년 말에 간암발병. 2001년 1월 향년 54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