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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대흠 시인 / 천관(天冠)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17.

이대흠 시인 / 천관(天冠)

 

 

강으로 간 새들이

강을 물고 돌아오는 저물녘에 차를 마신다

 

막 돋아난 개밥바라기를 보며

별의 뒤편 그늘을 생각하는 동안

 

노을은 바위에 들고

바위는 노을을 새긴다

 

오랜만에 바위와

놀빛처럼 마주 앉은 그대와 나는 말이 없고

 

먼 데 갔다 온 새들이

어둠에 덧칠된다

 

참 멀리 갔구나 싶어도

거기 있고

 

참 멀리 왔구나 싶어도

여기 있다

 

-시집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창비, 2018

 

 


 

 

이대흠 시인 / 고매(古梅)에 취하다

 

 

밭패기 팔아 들여온 짤가마에서

고방 항아리로 짤알들 쏟아지는 소리

햇살이 몽글다

어깨가 좁았던 사람

착해서 가난해진 그 사람의 몸에서 나던 살냄새

바람이 여물 먹은 소처럼 순해진다

몸이 검다는 것은 울음이 많이 쌓였다는 것

청산초 잎이 어린 쥐의 귀처럼

쫑긋하다

탈출구 없는 향기의 감옥

멀리 왔다 했으나

여전히 묶였다

온갖 소리 다스민

저 아래에서

도대체 뿌리는

얼마나 많은 귀일까

 

 


 

이대흠 시인

1967년 전남 장흥군에서 출생. 서울예술대학과 조선대 문예창작과 졸업. 목포대 국문과에서 문학박사 학위 취득. 1994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귀가 서럽다』 『물 속의 불』 『상처가 나를 살린다』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와 장편소설 『청앵』 연구서 『문학파의 문학세계 연구』. 조태일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전남문화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