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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전순영 시인 / 벌레 먹은 하늘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27.

전순영 시인 / 벌레 먹은 하늘

 

 

빛을 길어 올리려는 미끼들로 출렁이고 있다

호수가 돌이 된 구멍 난 하늘

몸이 우둘우둘 떨리고 코끝에는 고드름이 맺혔다

어둠이 가득한 바다에는 문신처럼 새겨진 얼굴 그는

어둠 속을 헤엄치는 문어다

악어가 둥근 달처럼 입을 활짝 열고 달려오면

바람같이 어둠 속을 날아서 동굴 속으로 숨었다가

몇 개씩 얼굴을 바꾸기도 하는...

우술 우술 떨어지는 벌레 똥이며 석탄 덩이며 자잘한 돌멩이며

손에 닿는 대로 몸을 감싼 동그란 돌

`악어가 덜컥 물고 꿀꺽 삼키고 또 삼키지만

목구멍에 꽉 눌러붙은 문어

일순간 미끄러져 악어 등에 올라 馬로 부리는데

바다는 부글부글 끓고......

석탄은 압박에 눌려 태어난 사생아로 이편도 저편도 들지 않는

광산촌은 검은 하늘

막장 속은 붉은 하늘

날마다 배달되는 벌레 먹은 하늘

막장은 명동에도 충무로에도 숨 쉬는 곳엔 어디에도 있는

소가 마지막 넘어질 때까지 목에다 멍에를 메고 왔던 것처럼

우리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오늘이란 밧줄에 묶여

까만 세상을 헤엄치는 손과 발이 백 개 천 개

 

웹진 『시인광장』 2022년 7월호 발표​

 

 


 

전순영 시인

전남 나주 출생. 1999년 《현대시학》를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목이 마른 나의 샘물에게』와 『시간을 갉아먹는 누에』 『숨』 등과 에세이집 『너에게 물들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