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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미정 시인 / 당신은 어느 아침에 살고 있습니까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27.

김미정 시인 / 당신은 어느 아침에 살고 있습니까

 

 

 비어있는 주전자가 혼자 끓고 있다

 

 뜨거운 비밀들,

 시간의 바깥으로 흘러넘치고

 

 유리 조각이 식탁의 잘린 표정을 번식시킨다

 

 나무에서/빛을 빼고/그늘을 걷고/화분을 지우자/비로소 그림자가 되고/주방 바닥에/유리잔을 깨고/베란다를 부수고/커피를 버리자/그녀만 남았다/빛을 쏟아붓고/울타리를 만들고/의자를 놓고/꽃과 나무를 심었다/눈부신 아침/아침과 또 아침/아침이 반복되자/아무도 모르게/그녀가 사라졌다

 

 언제부터

 하루의 내부가 이렇게 좁아진 것일까

 

 만져지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투명한 하루의 이마가 드러나고 있었다

 

웹진 『시인광장』 2022년 7월호 발표​

 

 


 

김미정 시인

2002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2009년 《시와 세계》 여름호 평론 당선. 시집으로 『하드와 아이스크림』(시와세계, 2012)과 『물고기 신발』(천년의시작, 2019)이 있음. 2012년 제3회 시와세계작품상 수상.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