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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미경 시인 / 어치를 기다려도 될까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27.

고미경 시인 / 어치를 기다려도 될까

 

 

아직 길 위에 있다 나는

무얼 찾고 있는 것도 아닌데

 

가로지르고 꼬부라져도 그 자리

종종거리면서 예서제서 그렇게

애면글면 시나브로 오무렸다 늘어났다가 접히기도

 

강아지처럼 웅크리고 있어도

그림자가 날뛰는

초현실적인 세상에서

 

보이지도 않는데 어치 울음소리에 귀가 젖는다

 

어치를 부를 수만 있다면

눈에서 사과를 딸 수 있을 텐데

 

어치, 어치, 어치, 어쩌면 너무 늦었는지 몰라, 어쩌면 아직일까

 

홀로 낡아가는 것보다 여벌이어도

나는 괜찮아

 

가슴에서 올라오는 말들을

혀로 감싸보지만

털 많은 곤충을 씹은 양

입안이 껄끄럽다

 

웹진 『시인광장』 2022년 7월호 발표​

 

 


 

고미경 시인

1964년 충남 보령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199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인질』(문학의전당, 2008)과 『칸트의 우산』(현대시학, 2015), 『그 여름의 서쪽 해변』(현대시학, 2022)이 있음. 현재〈시비〉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