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 시인 / 둠벙 속 붕어
둠벙의 물 다 퍼내면 거기 살던 물고기들 어디로 숨을까, 진흙더미에 처박혀 파닥거리는 지느러미 추스르며 논둑길을 따라 걷다가 내 딴엔 없는 낚싯대도 펼쳐놓고 앉았는데 키 큰 벙어리가 옆에 와서 내 낚싯대로 연신 손바닥만한 붕어를 걸어내는 것이다
방죽 너머로는 누군가 투신해서 푸르다는 바다, 그 꿈을 다 퍼낼 수 없어 우리는 풍파를 모르는 둠벙이나 가끔 살피는데 보기보단 깊지 않은지 동네 청년들이 모터를 걸어 넣고 바닥째 비워내곤 했다
오늘은 둠벙 둑에 소방차가 서 있다, 경찰까지 보이니 커다란 호스로 물을 콸콸 뽑아내는 사람들 곁에서 바닥이 언제 드러나나 한참 기다리고 섰다가 꽤 지체될 것 같아 집으로 돌아왔는데
들은 이야기로는 여자는 없었고 살이 다 털린 사체가 발견되었다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몇 해 동안 그 둠벙 속 붕어를 졸였으니 식인 물고기의 먹이사슬 위에서 생각을 뜯었던 것이다
김명인 시인 / 안개 바다
안개로군. 누가 말했다. 지독한 안개야. 사방이 끊어지고 문득 되돌아보면 캄캄한 안개 바다. 바다가 안개를 퍼올리는 것이 아니라 안개가 파도를 가려 놓고 있었다 네가 홀로 웅크린 곳은 어디든지 절벽 같은 파도의 끝. 일확천금을 꿈꾸면서 안개 속에 그물을 던지면서 몸을 버리면서 너도 여기에 묶여 있었느냐? 마침내 스스로 풀 때 꺼져버리는 네 모습의 안개 위로 내 모습의 안개가 포개더니 천천히 비워져 간다.
무엇을 잡는 것이 아니라 잡히는 거라고 안개는 살아갈수록 어리석고 뼈아픈 우리들의 욕심일까, 욕심의 갈고리를 하고 안개가 바다 쪽에서 끊임없이 우리들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안개 개자 아주 몸을 버린 사람들은 여기 남아 물결에 떠밀리고 덜 젖은 또 다른 사람들은 천천히 몇 명씩 다시 안개를 쫓아 바다를 등지고 떠나고 있었다.
-시집 『동두천』(문학과지성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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