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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용 신부의 사제의 눈] 철 지난 낙수효과론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17.

[정수용 신부의 사제의 눈] 철 지난 낙수효과론

정수용 신부(CPBC 보도주간)

가톨릭평화신문 2022.07.10 발행 [1670호]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습니다. 고물가 시대에 새 정부의 경제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습니다. 단연 논란으로 이어진 사안은 법인세율 인하 관련 내용이었습니다. 법인세는 말 그대로 법인의 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입니다. 주식회사와 같이 법인 형태로 사업하는 경우, 사업에서 생긴 소득에 세금을 매기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기업에 부과하는 소득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 발표를 보면, 현행 최고 세율 25%를 적용받는 구간을 22%로 낮추겠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돈을 많이 버는 기업 세금을 깎아 주면 그만큼 투자도 적극적으로 하고,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 자연스레 국가의 성장 잠재력이 높아지기에 결과적으로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논리입니다. 이는 전형적인 낙수 이론적 접근입니다. 부유층과 사업가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면, 더욱 활발히 활동함으로써 경제 전반이 개선될 수 있고, 그로 인한 혜택은 저소득층과 하층민에게도 돌아가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낙수 이론이 현실 경제에서는 그 효과가 검증된 적이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세금을 깎아 주면 투자와 고용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큰 영향이 없었고, 오히려 기업의 사내 유보금만 커졌다는 지적입니다. 2015년 국제통화기금 IMF 전략정책평가국은 전 세계 150여 개국 사례를 분석한 결과 이른바 낙수 효과는 완전히 틀린 논리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낙수효과는 입증된 적이 없으며, “과거에는 유리잔이 가득 차면 가난한 이들에게도 이익이 분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유리잔이 가득 차면 마술처럼 유리잔이 더 커져서 가난한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교황님은 회칙 「모든 형제들」 168항에서도 신자유주의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마치 마술과 같은 이론인 낙수이론에 기대어 반복 재생산하지만, 오늘날의 불평등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하십니다.

 

이번 발표에 따라 혜택을 보는 기업은 우리나라 최상위 기업 80여 개로 전체 법인세 대상 중 0.01%에 불과합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여기서 감소하는 세수를 추정해보니, 2020년 신고 기준으로 약 1조 7000억 원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법인세율 인하는 단순히 세수가 줄어든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결국, 부자 감세로 줄어든 세수는 다른 누군가의 증세로 연결되거나, 아니면 정부의 꼭 필요한 지출을 그만큼 줄여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당장 사회 취약계층에 주어진 다양한 지원이 줄어들 수 있단 우려도 나옵니다.

 

이런 의미에서 새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은 다시 검토되어야 합니다. 더 많이 번 기업의 수익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사회적 경제적 취약층을 지원해,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로 더욱 심각해진 양극화 해결에 노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질 때 스스로 버틸 수 있는 대기업의 법인세에 방점이 찍힐 것이 아니라 오르는 물가에 가장 버티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정책이 먼저 필요해 보입니다. 새 정부가 경제 정책 방향을 수립할 때, ‘경제(經濟)’라는 말은 ‘세상과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이란 뜻의 ‘경세제민(經世濟民)’에서 유래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