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희 시인(影園) / 대한독립만세!
기미년 3월 1일 인사동 태화관(泰華館)에 모인 민족대표 33인 육당 선생님이 작성한 독립선언서 이만 천여 장을 인쇄한 보성사 이종일 사장 만해 선생님의 만세 선창 대한독립만세! 태화관 밖에서 총검을 들고 일본 경찰이 대기했다 아랑곳하지 않은 함성(喊聲) 대한독립만세! 일본 경찰에 연행되는 민족대표는 의연했다
탑골공원에 모인 중등학교 남녀 학생 오천명 한 목소리로 외쳤다 대한독립만세! 종로 쪽으로 뛰쳐나온 시위 행렬 대한문(大漢門)에 이르러 고종황제의 빈전에 절할 때 군중은 땅을 치고 통곡했다 대한독립만세! 종교를 초월하고 남녀노소 모두 모였다 상인도 거지도 기생도 양반도 상민도 민족의 이름으로 불렀다 대한독립만세!
질서 있게 외쳐라, 대한독립만세! 비폭력 저항 운동이다, 대한독립만세! 무차별 탄압과 총검을 휘두른 일본 경찰 세계가 주목하여 일제의 야만을 규탄했다
독립만세운동으로 점화된 횃불 전국 방방곡곡에서 활활 타오르고 북간도에서 연해주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태평양 건너 미국까지 그 불길 번졌다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하고 주권 회복하는 그날까지 멈출 수 없었던 항거(抗拒)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선조들의 핏줄을 타고 흘러온 뜨거운 함성 후예들의 가슴에 붉은 꽃으로 피었습니다 대 한 독 립 만 세!
김인희 시인(影園) / 꽃상여
중학교 시절 토요일 하굣길이었다 사춘기 계집아이들 도토리 웃음소리 하늘땅 흔들고 막 모내기를 마친 논에는 모가 뿌리 잡느라 애쓰고 있었다 비포장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트럭이 달렸다 자운영꽃 한 움큼 움켜쥐고 화들짝 놀라 비켜서고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지는 트럭 짐칸에서 검은색 천을 뒤집어쓴 꽃상여를 보았다
이상하다 꽃상여를 왜 숨겨서 가져갈까 뒷마을 할아버지는 멋진 꽃상여를 타고 가셨다 아랫마을 할머니도 예쁜 꽃상여를 타고 가셨다 잠시 침묵이 흘렀을 뿐 계집아이들은 풀밭에 주저앉아 네 잎 클로버를 찾느라 먼지 속으로 사라진 꽃상여를 잊었을 것이다
다음다음날 등굣길에서 들었다 건너 마을에 사는 키 작은 선배 언니가 하늘나라로 갔단다 시름시름 앓던 소녀를 서울 큰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했단다 그 소녀가 죽기 며칠 전에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 말했단다 엄마, 아파서 미안해. 나 죽으면 꽃상여 타고 싶어
어쩌다 불에 달군 못에 찔리듯 아파오는 추억 아카시아 꽃 눈발처럼 쏟아지던 찬란한 5월이었다
김인희 시인(影園) / 봄
만삭의 몸을 이끌고 시베리아 바람 이겨냈다
깊은 골짜기 양수 흘러넘치고 가지마다 생살을 찢는다
해산의 진통 대지는 몸부림치고 하늘은 구름 휘장 펼치어 산실을 만든다
하마 부끄러워 어둠 속에서 고개 내밀 때 숨죽인 별들이 산파가 되었다
눈 녹은 자리 갓 태어난 수선화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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