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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11) 한여름에 꽃 피우는 자귀나무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27.

[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11) 한여름에 꽃 피우는 자귀나무

화려하게 여름을 알리는 자귀나무꽃

가톨릭평화신문 2022.07.24 발행 [1672호]

 

 

 

 

한여름 꽃을 피우는 나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무더운 날씨에 활짝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무궁화꽃, 자귀나무꽃, 그리고 배롱나무꽃은 단연 대표적인 여름 나무꽃이다. 여름에 피는 이들 꽃의 특성은 오래간다는 것이다. 아니, 꽃이 오래간다기보다는 꽃이 지고 다시 피는 기간이 오래간다는 표현이 맞다. 한 꽃이 지고 나면 또 다른 꽃이 피어서 오랫동안 있는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여름이 되면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자귀나무를 소개하려 한다.

 

자귀나무란 이름이 낯설게 느끼는 독자도 많을 것 같다. 이 나무 이름의 어원은 불분명하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나무를 깎거나 다듬는 데 쓰는 연모 ‘자귀’를 만드는 데 쓰였다고 해서 이름이 유래됐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밤이면 잎이 서로 합쳐짐으로 자는 시간을 귀신같이 안다고 해서 자귀나무라고 한다는 사람도 있다. 이들 모두가 그냥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자귀나무꽃은 6월 중순쯤 되면서 피기 시작한다. 내가 본 자귀나무꽃에 대한 첫 기억은 아마 중학교 다닐 때쯤이다. 어렸을 때 읽었던 「아라비안나이트」를 연상해서일까, 꽃 모양이 화려하고 이국적이어서 마치 페르시아 궁전의 정원에 심어져 있는 나무가 아닐까 상상했었다. 그런데 진짜 자귀나무의 영어 이름이 ‘Persian silk tree’라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콩과 식물인 자귀나무의 영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산은 이란과 중국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외에도 대만, 인도, 네팔, 일본 등지에서 자란다. 자귀나무는 대개 가지가 길게 펼쳐 부채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인 모습은 부드럽고 풍성해 보인다. 영어 이름에 실크가 붙은 것도 꽃의 수술 모양과 감촉, 색깔이 비단 같다고 해서 붙여진 모양이다. 꽃의 향기도 향수 못지않게 강렬하다. 이런 자귀나무도 지방에 따라서 선호가 다른 모양이다. 특히 제주에서는 이 나무를 잡귀가 든 나무라 하기도 해서 집안에는 심지 않았다 하고, 마소가 망한다 하여 땔감으로 쓰지도 않았다 한다.

 

자귀나무꽃의 화려한 이런 나무의 모양 때문에 공원이나 건물의 정원에 많이 심어져 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도서관 옆에 자귀나무 있는데, 여름에는 멋진 꽃과 풍성한 나무의 모습에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는 장소로 붐비는 곳이다. 이 화려한 꽃도 7월이 지나면 지기 시작하여 10월쯤에는 열매가 달린다. 콩과식물이기에 열매는 콩깍지처럼 긴 주머니에 담겨 있고, 잎이 다 떨어진 겨울에도 남아있어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는 마치 악기 연주하듯 바스락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자귀나무의 잎은 햇볕이 없어지는 잎자루의 볼록한 부분에 있는 수분이 일시적으로 빠져나와 잎이 닫히게 된다. 대개 콩과식물들이 이러한 현상을 보이는데 생물학적 용어로는 수면 운동이라고 한다. 어느 식물학도가 자귀나무 잎을 채집하여 표본을 만들려고 보관했는데 12시간이 지난 후에도 스스로 이 수면운동을 하고 있더라는 글을 읽었다. 나무도 고도의 생물적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귀나무 잎의 이런 특성 때문에 사람들은 금슬나무라고 부르고, 옛날에는 신혼집 마당에 부부가 평생 잘 살라는 뜻으로 심었다고도 한다. 그리고 금슬이 좋지 않은 부부에겐 자귀나무 꽃잎을 베개 속에 넣으라고 일렀다고 하는 속설도 있다.

 

 


 

신원섭 라파엘 교수

(충북대 산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