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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영화의 향기 with CaFF] (172) 경아의 딸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28.

[영화의 향기 with CaFF] (172) 경아의 딸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을 향한 응원

가톨릭평화신문 2022.07.24 발행 [1672호]

 

 

 

 

영화의 향기 - 경아의 딸(Gyeong-ah’s Daughter, 2022)

 

영화 ‘경아의 딸’은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상처에 머물지 않고, 상처를 뛰어넘어 회복하고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영화다. 나아가 이 영화는 모든 세대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감독은 이런 류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범죄의 과정이나 피해자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신 성범죄 피해를 본 주인공이 어떻게 그 상처를 극복하고, 나아가려고 노력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성범죄 피해자는 경아의 딸, 연수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다시 만나주지 않자 자신과 찍은 성관계 동영상을 연수의 엄마와 친구들에게 보내고 인터넷에까지 유포한 것이다.

 

엄마 경아는 크게 충격을 받고 연수에게 모진 말을 한다. 누구보다 위로받고 싶었던 사람이 엄마였기에 엄마의 말은 비수가 되어 연수의 가슴에 와서 꽂힌다. 상처 입은 연수는 엄마와 연락을 단절한 채 인터넷에 유포된 영상을 지우기 위해 혼자 안간힘을 쓴다.

 

이 영화를 만든 김정은 감독은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처음에 완성했던 초고는 주인공의 일상과 고통을 피상적으로 그리는 것에 그쳤다. 좀 더 깊고 내밀한 이야기를 그려나갈 필요성을 느낀 그는 시나리오의 방향을 완전히 바꿨다. 만약 자신이 피해 여성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무엇이 가장 두려울지 생각했다.

 

특히 피해자의 고통을 그리는 방식을 고심했다. 현실적으로 보여주되 고통을 전시하지 않는 것, 그리고 사회에서 말하는 ‘피해자다움’에 갇히지 않도록 주의했다. 큰 고통이지만, 분명히 끝이 있고 희망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 다행히 시나리오를 본 사람들이 인물들의 관계 회복과 치유에 집중하고 있어서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경아의 딸’이 탄생했다.

 

김정은 감독에게 이 영화는 첫 번째 장편이다. 이전에 그는 다섯 편의 단편영화를 만든 경험이 있다. 그중 하나가 제4회 가톨릭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야간근무’라는 영화다. ‘야간근무’를 보고 저력이 있는 감독이라 생각했는데,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두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고,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사회적 문제를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자신만의 시각으로 풀어냈었다.

 

‘경아의 딸’에서도 감독은 섣불리 해피엔딩을 그리지 않았다. 쉽게 결론을 내려주지 않고 관객들에게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N번방 사건’ 등 성 착취 영상 문제가 크게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던 게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성적인 면’만 강조해 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지어진 존재다. 서로의 존재 안에 들어 있는 존귀함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사람을 ‘상품’으로만 바라보는 일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경아의 딸’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안 될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다.

 

 


 

서빈 미카엘라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극작가, 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