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욱 시인 / Bb 석양, 울음
단조는 울음과 웃음이 섞여야 매혹적이야. 검은 건반이 퍼덕이며 Bb을 읇조린다. 낙엽의 장송곡을 따라 서쪽으로 노을에 주사바늘을 꽂고 수압을 톡톡 건드리며, 자전거가 홀로 감전된 시간을 타오른다. 그대의 긴 머리카락은 늘 폐쇄적이었어. 끝내 섞이지 못했던 말랑말랑한 만남의 처음과 끝은 이제 그렁그렁 떨어지는 목련꽃이야. 붉은 드레스의 끝자락을 하늘거리며 그대의 발목은 폐혈관을 뚫고 황금빛 솔 달린 장막 뒤로 사라졌다. 흔들리는 양초가 피우는 오해는 재미있어. 거짓말처럼 사과조각을 뱉으며 곡예를 하지. 썰물과 밀물이 접힌 마음을 다림질할 수 있게. 노을아 검붉은 피를 쏟아 연주해 주렴. 고양이가 밀도 높은 망울 속으로 소리치는 나팔꽃을 물고 스며든다. 한 하늘, 물먹은 솜, 얼굴이 매운 듯 하품을 하다 검은 우산을 쓴 석양으로 젖어드는 그대의 눈물은 투명한 젤리 같아.
《문장웹진 3월호)
김제욱 시인 / 상처마다 글자가 흘러나와
투툭 떨어지는 말을 적는다.
점점 자라나는 허공의 무게 놀란 눈동자가 튀어 오르고 벗겨내고 씻겨내고 소멸하는 안개의 흔적.
글자들이 쌓인 무덤을 지나는 순례자의 마음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시선. 걸음마다 눈길마다 꽃피는 능선.
어둠이 익숙해진 이후 모닥불을 피웠는데 두 얼굴이더라!
이것은 내가 아니다. 길은 네가 아니다. 너는 나의 시다.
잠시 멈칫 시선에 장식이 없는 늙은이는 벗을 기다린다. 아이는 길을 해석하지 않는다. 호흡을 벼랑이라 노래하지 않는다.
서재에 앉아 기울어지는 몸을 느낀다. 글자를 봅아내는 외침. 불안이 손길 위에 잔잔히 흐른다.
- 2014년 <유심>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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