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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14) 무궁화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3.

[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14) 수난과 무더위를 이기고 활짝 핀 무궁화

우리 민족이 사랑한 기품있는 무궁화

가톨릭평화신문 2022.08.21 발행 [1675호]

 

 

 

 

가을의 문을 열기 전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의 중순이다. 이때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꽃이 바로 무궁화 꽃이다. 무궁화는 무어라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꽃이다. 광복절이 있는 8월 무궁화는 유난히 기품있게 피어있다.

 

무궁화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자라서 나도 어릴 때부터 흔히 보아왔다. 그런데 어렸을 때 무궁화에 대한 기억은 그리 좋은 게 아니었다. 진딧물이 많이 꼬이는 꽃, 꽃가루가 눈병이나 피부병을 일으키는 꽃이라는 등, 생각하면 아무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무궁화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했다.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일제의 책략이었다니 더욱 무궁화에 대해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겹친다.

 

무궁화 역시 무더위를 견디면서 오래 꽃이 피어 있는 나무이다. 실제로는 무궁화 꽃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때는 지고 다음 날 아침에 새로운 꽃이 피어나 또 지고 해서 거의 석 달 정도 꽃을 피운다. 한 나무에서 보통 2000~3000개의 꽃이 핀다고 한다. 무궁화의 원산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무궁화의 학명은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Hibiscus syriacus)인데 그래서 중동의 시리아라고 하기도 하고, 중국과 인도 쪽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다.

 

무궁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나라의 상징이 된 역사는 꽤 오래전이다. 신라 때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내는 문서에서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 즉 ‘무궁화의 나라’라고 자칭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또 애국가의 후렴에 나오는 ‘무궁화 삼천리 ~’라는 표현도 고려 때 「고려도경」이란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지금도 무궁화 문양은 대통령 휘장, 국회의 상징, 법원의 문장, 그리고 경찰관, 국군의 장교 계급장에 쓰이고 있다. 대통령이나 그 배우자, 그리고 우방국의 원수에게 수여하는 훈장이 무궁화대훈장이고, 국민훈장 중에도 1등급이 무궁화장이다.

 

내가 최근 무궁화에 대한 진정한 아름다움을 깨달은 것은 매년 산림청이 주관해서 열리는 나라꽃 무궁화 축제에 참여하고 나서부터이다. 1991년부터 나라꽃 무궁화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알리기 위한 축제인데 매년 무궁화가 만개하는 8월 8일 전후 3일간에 열린다. 올해는 32회째인데 8월 10~15일까지 충남 보령에서 개최됐다. 우리나라에서 보유하고 있는 무궁화 품종 200여 종 중 180여 종을 관찰할 수 있으며, 무궁화 화분 나누어주기 행사를 비롯해 무궁화를 테마로 한 음식과 전시ㆍ체험 프로그램 등을 즐길 수 있다. 이 무궁화 축제의 정수는 전국 경연대회를 거쳐 수상한 최고의 무궁화 꽃과 분재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궁화가 이렇게 고결하고 예쁘고, 멋진 꽃인지 느낄 수 있고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자부심을 줄 만한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무궁화 중에서 강릉 방동리에 있는 무궁화가 천연기념물 제520호로 2011년 지정됐다. 강릉 박씨 문중의 조상을 모신 재실 안쪽에 심겨있고, 나이는 110세 정도다. 이 무궁화와 쌍벽을 이루었던 옹진군 연화리의 무궁화도 천연기념물 제521호로 지정돼 있었지만 2019년 안타깝게도 고사했다.

 

무궁화가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사랑하고 우리나라를 상징하며, 영예를 나타내는 꽃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 꽃이 받아온 멸시와 설움의 골은 깊고도 길다. 일제의 터무니없는 민족정기말살 정책으로 한때는 뽑혀 불태워지는 수난까지 겪었다. 그런 고난을 묵묵히 견디고 올 8월에도 희고 붉은 무궁화는 고고한 자태로 피어나고 있다. 고진감래의 교훈을 무궁화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신원섭 라파엘 교수

(충북대 산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