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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사라 시인 / 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25.

이사라 시인 / 결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많다

 

깃털 같은 마음으로

사막에 집을 짓는 건축가도 있다.

눈빛 속에 사람을 심는 예술가도 있다.

 

태어나서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디든 지붕만 얹으면 살아나는 것이 집이라며

 

물이 물결을 만들 듯이

나무가 나뭇결을 만들 듯이

결이 보일 때까지 느긋하게 살면서

사람 결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지붕 고치듯 마음만 고치면

몇 백 년을 훌쩍 넘긴 마음도 가질 수 있다.

 

 


 

 

이사라 시인 / 문병

 

 

당신도

반짝이는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던 기억이 있겠지

 

다친 무릎을 툭툭 털고

긴 상처의 지퍼를 끌어올리고

시간의 바퀴를 굴려

사람이 되려고 하던 날들

 

하루하루 구름처럼 엉켜 떠다니고

날마다 잡초처럼 세상으로 뻗어나가고

뒤꿈치 내려앉는 신발들처럼 낡아가서

사람이 되려다 말고

 

마침내 바닥에 드러누운 사람이 되어버리는

그렇게 희미해져버리는

 

그런데도 그래도

구르지 않는 상자는 사각의 관이 된다고

식구들은 자고 일어나면

창을 열고

공처럼 굴러가네

저만치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녀를 두고

그를 두고,

저만치

 

 


 

이사라 시인

1953년 서울에서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및 同 대학원 졸업. 1981년 《문학사상》에 <히브리인의 마을 앞에서>외 6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히브리인의 마을 앞에서』, 『미학적 슬픔』, 『숲속에서 묻는다』, 『시간이 지나간 시간』, 『가족박물관』, 『훗날 훗사람』이 있음. 1989년 대한민국 문학상 수상.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