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숙 시인 / 홍어
지푸라기에 한 꾸러미 홍어를 매단 아버지 등이 풍덕천 오일장 달무리 앉은 겨울 그루터기처럼 수척하였다 굵은 땀방울에 살 삭는 냄새가 났다 팔 남매를 둔 무릎 아래 새끼줄 얽힌 한 시절은 홍어를 썩히는데 다 지났을까
홍어 안주 탁주 한 잔에 진양조 육자배기 배어나고 니들도 더 살어 봐 빠진 이 사이사이 배알이 톡톡 터지는 소리 얼큰한 초저녁 술잔 위에 떠오르는 황토빛 그림자 너머 막막강산에 젖어오는 헛기침 소리
정병숙 시인 / 토르소의 노래
26-1번 버스가 마장역을 지날 때 그의 어깨에 펄럭이는 긴소매 온몸에 구릿빛 바람을 발라놓고 문득 천 년의 흙덩이를 거슬러 오른 침묵하는 토르소를 본다
그의 바구니에 지폐 몇 장과 흩어진 동전들 세상 속으로 손 내미는 내 양심은 도망치고 있었다 당신,잘려나간 왼쪽 팔은 어느 언덕에 묻었는가
깊은 강을 헤엄치듯 천천히 횡단보도 건너 북적이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선 그의 꿈이 파란 신호에 머뭇거릴 때
밑그림부터 잘못된 드로잉 거친 호흡을 몰아 우리는 나란히 신호를 건넜다
천년 어둠에 잠든 토르소는 언제쯤 깨어 미켈란젤로를 노래할까
전선 위의 새가 황혼 속으로 사라질 때 청계천 고가 아래 잘려진 허벅지가 달궈진 아스팔트를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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