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정병숙 시인 / 홍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25.

정병숙 시인 / 홍어

 

 

지푸라기에 한 꾸러미

홍어를 매단 아버지 등이

풍덕천 오일장 달무리 앉은

겨울 그루터기처럼 수척하였다

굵은 땀방울에 살 삭는 냄새가 났다

팔 남매를 둔 무릎 아래

새끼줄 얽힌 한 시절은

홍어를 썩히는데 다 지났을까

 

홍어 안주 탁주 한 잔에

진양조 육자배기 배어나고

니들도 더 살어 봐

빠진 이 사이사이

배알이 톡톡 터지는 소리

얼큰한 초저녁 술잔 위에

떠오르는 황토빛 그림자 너머

막막강산에 젖어오는 헛기침 소리

 

 


 

 

정병숙 시인 / 토르소의 노래

 

 

26-1번 버스가 마장역을 지날 때

그의 어깨에 펄럭이는 긴소매

온몸에 구릿빛 바람을 발라놓고

문득 천 년의 흙덩이를 거슬러 오른

침묵하는 토르소를 본다

 

그의 바구니에 지폐 몇 장과 흩어진 동전들

세상 속으로 손 내미는

내 양심은 도망치고 있었다

당신,잘려나간 왼쪽 팔은

어느 언덕에 묻었는가

 

깊은 강을 헤엄치듯 천천히

횡단보도 건너

북적이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선

그의 꿈이 파란 신호에 머뭇거릴 때

 

밑그림부터 잘못된 드로잉

거친 호흡을 몰아 우리는

나란히 신호를 건넜다

 

천년 어둠에 잠든 토르소는

언제쯤 깨어 미켈란젤로를 노래할까

 

전선 위의 새가 황혼 속으로 사라질 때

청계천 고가 아래 잘려진 허벅지가

달궈진 아스팔트를 문질렀다

 

 


 

정병숙 시인

전남 순천 출생. 단국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졸업. 호서대학교 문화복지상담대학원 문화콘텐츠창작학과 석사. 동 대학원 한중문화콘텐츠학과 박사. 2003년 <정신과 표현>으로 등단. 현 호서대학교 강사로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