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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태승 시인 / 격렬한 대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26.

강태승 시인 / 격렬한 대화

 

 

사자가 목을 물자 네 발로 허공을 걸어가는 물소

물소의 눈빛 추억 이념 가족의 근황은 묻지 않고

뱃속에 저장된 수만 송이 꽃과 풀잎 속의 햇빛

달빛의 무게에 춘하추동 화인(火印)은 보지 않고,

 

사자는 물소의 목숨에 이빨을 박고 매달렸다

단지 배고플 뿐이고 고픈 이전으로 가야 한다

목숨이 아니라 부른 배이고 싶다는 사자와

네가 문 것은 아들이 기다리는 어미의 목이라는,

 

풍경을 경치로 저물고 있는 세렝게티

침묵 이전의 이전으로 가라앉고 있는 벌판

무슨 대화가 노을이 배경으로 깔리고 서늘한가

죽어야 하는 살아야 하는 시간이 저리 아늑한가

 

물소는 제 몸을 버리고 아들에게 돌아갔다

소가 던지고 간 고기로 배고픔을 잊은 사자

물소와 끝내 한마디 대화하지 못하고

사자에게 끝끝내 한마디 건네지 못한 하루가,

 

물소의 뼈만 벌판에 남긴 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강둑에선 하마를 질문하듯이 물어뜯는 하이에나

정답인 양 남은 코끼리의 뼈를 탐색하는 독수리

표범은 나무 위에서 발톱을 슬슬 긁고 있다.

 

 


 

 

강태승 시인 / 대못

 

 

나무는 대못에 찔리고 책상이 되었다

차갑고 냉정한 못을 앞세운

망치의 발길질을

제 중심으로 받고서야

집 되고 절도 되었다

어머니는 여섯 자식

여섯 대못을 가슴에 박고서

소슬한 한 채가 되었다

 

실한 대못은 똑바로 박혀

기둥 되고 서까래 되었지만

부실한 못은 바람 불 적마다

흔들려 망치질을 해야 했다

다른 곳에 박아도

자꾸만 흔들리고 녹스는 못에

어머니는 툭하면

눈물을 훔쳐야 했다.

 

-시집 『격렬한 대화』 푸른사상.

 

 


 

강태승(姜泰昇) 시인

1961년 충북 진천 백곡 출생. 2014년 『문예바다』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김만중문학상, 포항 소재 문학상, 『머니투데이』 신춘문예, 백교문학상, 한국해양재단 해양문학상, 추보문학상, 해동공자 최충 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칼의 노래』 『격렬한 대화』가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며 문예바다와 시마을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