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후기 시인 / 호버링
1
벌들은 왜 벌집 구멍 앞에서 멈칫거리는가
2
아빠, 안 들어가고 뭐해? 어디선가 나타난 딸이 등 뒤에 대고 묻는다
나는 가끔 대문 앞에 서서 머뭇거릴 때가 있다
잔잔한 물 위에 파문을 일으키며 잠시 고민에 잠긴 헬리콥터처럼, 나는 무엇을 망설이는가
3
호버링*, 땅 위에 주저앉지도 못하고 하늘 멀리 날아갈 수도 없는 어정쩡한 나이가 있다
靜中動의 사내여, 서러운 공중 부양이여 서글픈 가족 부양이여
中年의 헬리콥터가 굳게 잠긴 대문 앞에서 갸우뚱거린다
4
집을 나설 때가 집으로 돌아올 때보다 더 홀가분할 때가 있다
* 헬리콥터의 정지 비행을 이르는 말.
—《현대시》2011년 9월호
박후기 시인 / 고통 한 근
산수(山水)분재원 이끼 낀 유리창 너머 여린 나뭇가지에 돌멩이 하나 매달려 있다 수형(樹形)을 바꾸기 위해 수형(受刑)의 짐을 지운 것인데, 기묘한 과일* 같은 것이 탱탱한 줄에 목을 걸고 온몸으로 가지를 당기고 있다 전족을 한 키 작은 나무들 자꾸 허리만 굵어지는 봄날, 휘어진 나뭇가지에 필사적으로 매달린 고통 한 근
*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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