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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말씀묵상] 연중 제28주일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9.

[말씀묵상] 연중 제28주일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제1독서 2열왕 5,14-17 / 제2독서 2티모 2,8-13

복음 루카 17,11-19

가톨릭신문 2022-10-09 [제3313호, 19면]

 

 

나병 치유하는 은총 베푸신 예수님

육체와 영혼 모두 구원받으려면

흔들림없이 견고한 신앙심 가져야

 

 

 

‘10명의 나병 환자를 치유하다’ (이콘)

 

 

은혜로운 예수님과의 만남과 그분 안에서의 새로운 삶!

 

직장생활, 수도생활을 위해 일찌감치 고향을 떠났던 저는 늘 합숙소, 내무반, 기숙사, 수도원 등 공동생활 시설에서 살아왔습니다. 요즘은 훨씬 덜한데 과거 집단생활 시설은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전염성 강한 병균, 특히 피부질환 병균 앞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었습니다.

 

한번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기숙사에 원인도 증세도 잘 파악되지 않는 강력한 피부병이 침입했습니다. 아마도 새로 입소한 아이를 통해 들어온 듯 했습니다. 당시 피부병이 지닌 특징은 신속한 전염성, 지독한 간지럼 증세였습니다. 저도 예외 없이 전염되었는데, 정말이지 죽는 줄 알았습니다. 피부병은 즉시 온몸으로 번졌습니다. 밤낮없이 긁어댔는데, 특히 간지럼 증세는 밤이 되면 더 심해졌습니다. 자다가 자신도 모르게 긁다보니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습니다.

 

피부가 남달리 약해 다양한 피부질환을 겪어왔던 저이기에 복음에 등장하는 나병 환자들의 심정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나병은 오늘날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적용됐습니다. 잘 치료되지 않는 악성 피부병들을 통칭해서 나병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에야 워낙 의술이 발전해서 아무리 강한 악성 피부병이라 할지라도 신속하게 치료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 당시 악성 피부병은 치명적이었습니다.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 보니 효능이 제대로 검증도 안 된 다양한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다 더 증세가 악화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당시 나병 환자들이 겪었던 고통 중에 병의 증세가 가져다주는 고통도 큰 것이었지만, 더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율법규정에 따른 격리와 추방으로 인한 고통이었습니다. 당시 나병 진단은 ‘추방명령서’ 혹은 ‘사망진단서’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나병 진단과 동시에 환자들은 즉시 집을 떠나 성 밖으로 나가 살아야했습니다. 그들은 인적이 드문 숲속에서, 어두컴컴한 토굴 속에서 짐승처럼 살아갔습니다. 누군가로부터의 치료나 보살핌은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살아있었지만 이미 죽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던, 삶 전체가 우울한 회색빛이었던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오늘 기적적으로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 나병 환자들이 지니고 있었던 특징 한 가지는 적극성이었습니다. 당시 수많은 나병 환자들이 있었습니다만, 이 환자들은 더 강렬한 적극성을 지녔습니다.

 

동시에 그에게는 예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그리스도 메시아라는 강렬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꼭 치유되어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아보고 싶은 강한 원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희망을 안고, 체면도 다 던져버리고, 예수님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7,13)

 

측은지심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시던 예수님께서 이윽고 행동을 개시하십니다. 간단하게 딱 한 말씀만 건네십니다.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놀랍게도 그 어떤 치료행위도 안 하셨는데, 그 간단한 한 말씀으로 끝내셨습니다. 나병 환자들은 사제에게 가는 도중 말끔히 병이 나았습니다.

 

은혜로운 예수님과의 만남과 그분 안에서의 새로운 삶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우리도 기억해야겠습니다. 나병 환자들의 적극성을 눈여겨봐야겠습니다. 꼭 치유되어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그들에게 구원을 가져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꼭 자신을 치유시킬 능력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확신이 그들을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건너오게 한 것입니다.

 

일시적 행복만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까지 보장받은 단 한 사람!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 사람만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지녔던 강렬한 믿음은 치유의 은총을 입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겸손의 덕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감사할 줄도 몰랐던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인사도 제대로 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안고 있었던 가장 치명적인 약점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지속성이 결여된 믿음이었습니다. 한때 믿음을 지니기는 했었지만 그 믿음이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상황이 다급할 때, 정말 필요할 때, 화장실 들어갈 때는 대단했지만, 그들의 간절한 육체적 바람이 충족되는 순간 믿음은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미성숙한 신앙과 성숙한 신앙이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그들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외면적인 것에만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일회적인 것에만 목숨을 걸고 있었습니다. 멀리 보지 못하고 한 치 앞만 바라봤던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유다인도 아닌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달려와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총과 자비에 깊은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겸손이 낳은 결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나병을 고쳐주신 예수님께서 육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책임져주실 분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토록 그의 믿음은 참으로 성숙한 것이고 또한 지속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크신 은혜를 베푸시어 열 사람의 나병환자를 동시에 치유시켰지만 낫게 되자마자 다들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코빼기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마음이 참으로 씁쓸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온 단 한 명의 이방인을 대견하게 여기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돌아와 인사드린 사마리아 사람은 육체적인 건강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받았습니다. 건강만 되찾은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건강해진 것입니다. 일시적 행복만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까지 보장받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닌 신앙에도 필요한 측면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흔들림 없는 견고함입니다. 일회적이거나 단속적인 것이 아닌 지속적이고 항구한 든든한 신앙입니다.

 

 


 

양승국 신부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는 1994년 사제품을 받고 영성신학 전공으로 로마 살레시오대학교를 졸업했다. 지금까지 서울 대림동 수도원 원장, 수련장 및 대전 정림동 수도원 원장, 서울 관구관 원장, 부관구장, 관구장 등을 역임해 왔다. 현재 태안 내리공동체 원장 겸 살레시오 피정센터 담당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