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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덕남 시인 / 독거노인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17.

윤덕남 시인 / 독거노인

 

 

벽에 난 금을 따라가다 보면

반지하에 살고 있는 그림자가 있었다

한 번도 내려가 보지 못한 곳이지만

간간이 들리는 소리를 잘 들어보면

자기공명영상처럼 세밀하게 찍힌 그림자가 살고 있었다

 

그림자는 자신을 닮은 그림자들이 일본에 살고 있었지만

그 그림자들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연탄가스처럼 새어나오는 라디오 소리가 들리곤 하였는데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 방송이었다

 

그림자에 대한 소문도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들은 반숙된 소문이라 조금은 신빙성이 없었다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나의 그림자는

빳빳하게 곤두선 채 차디찬 벽에 기대곤 하였다

늙은 고양이 소리도 새어나오곤 하였는데

어느 땐 왕릉 주위를 배회하는 바람 소리 같았다

 

설날 아침 그곳을 지나가다

우연히 응급차에 실리는 그림자를 보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그림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지하에는 더 이상 어떤 그림자도 기거하지 않았다

갓 태어난 고양이 울음소리만이 맴돌았다

그림자는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고 하였다

자살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었다

 

 


 

윤덕남 시인

1969년 충남 장항 출생. 침례신학대 신학과 졸업.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0년 계간 <현대시문학> 단편소설 당선. 2012년 창조문예 시 신인상 수상. 2014년 <시인동네>로 등단. 현재 〈기독교신문〉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