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남 시인 / 독거노인
벽에 난 금을 따라가다 보면 반지하에 살고 있는 그림자가 있었다 한 번도 내려가 보지 못한 곳이지만 간간이 들리는 소리를 잘 들어보면 자기공명영상처럼 세밀하게 찍힌 그림자가 살고 있었다
그림자는 자신을 닮은 그림자들이 일본에 살고 있었지만 그 그림자들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연탄가스처럼 새어나오는 라디오 소리가 들리곤 하였는데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 방송이었다
그림자에 대한 소문도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들은 반숙된 소문이라 조금은 신빙성이 없었다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나의 그림자는 빳빳하게 곤두선 채 차디찬 벽에 기대곤 하였다 늙은 고양이 소리도 새어나오곤 하였는데 어느 땐 왕릉 주위를 배회하는 바람 소리 같았다
설날 아침 그곳을 지나가다 우연히 응급차에 실리는 그림자를 보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그림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지하에는 더 이상 어떤 그림자도 기거하지 않았다 갓 태어난 고양이 울음소리만이 맴돌았다 그림자는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고 하였다 자살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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