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오 시인 / 결박(結縛)
당신을 제대로 포박할 수 있다면 더 할 수 없는 환희다
결박을 풀어야만 문장이 깊어지는 법 당신의 단어는 촘촘해지고 곳곳에 박혀있는 행간이 설레게 한다
허공의 줄은 당신을 강하게 잡아당기는 사슬 기우뚱거리지 않을 만큼 숱한 불면의 엉킴을 풀어내고 무너져 내리는 가장의 어깨를 붙잡는다 일터는 째진 눈을 하는 새벽달이 쳐다보고 거열형에 처해지는 이들처럼 즐은 팽팽하다
당신의 하루는 그림자처럼 겹쳐지고 간혹 침묵은 정돈된 단어를 흩뜨려버린다 몸을 껴안는 문서들 대리운전, 사다리, 지게차, 돌쇠인력, 파출부.... 하루를 포박당한 사람들은 높은 곳을 차마 탐하지 못할 지상의 작대기에 기대어 살고 단어를 곱씹어 거친 문장을 마름질 하는 시간
결박당한 변두리 어느 전봇대 어둠의 세계를 동경하는 그날까지 숱한 포박을 풀어 낸 문장이 기다려진다
-『시와소금」(2018, 봄호)
이원오 시인 / 시간의 유배였다
천리가 떨어진 섬에 위리안치圍籬安置하라
지엄한 명이다 길을 재촉하여 남도로 향한다 외로울 만큼의 착한 섬이다 갈매기가 친구가 되었다 굽이치는 파도가 벗이 되었다 굳이 가두지 않아도 되었다 시간이 나를 가두었으므로 유형이라는 이름의 공간에 영혼을 단련시켰다 시간의 공포가 엄습했다 시간의 죽음은 망각이었고 벼루 열 개를 닳아 없앤 뒤 그 멈춤을 이겨내고서야 비로서 공간을 성글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유배는 시간의 죄를 묻는 것이다 추운 시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알게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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