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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33) 설원의 귀족 자작나무

by 파스칼바이런 2023. 1. 10.

[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33) 설원의 귀족 자작나무

눈 덮인 평원, 꼿꼿하게 선 자작나무

가톨릭평화신문 2023.01.08 발행 [1694호]

 

 

 

 

자작나무 하면 많은 사람은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를 떠올린다. 눈 덮인 평원의 자작나무 숲을 지나가는 기차의 모습이 바로 그 장면이다. 그래서인지 자작나무는 항상 눈이 쌓인 설원에 끝없이 펼쳐진 흰 줄기의 나무가 공통된 이미지인 것 같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10여 년 전 흰 눈이 잔뜩 쌓인 삿포로 근교의 자작나무 숲의 광경이 마치 어제인 듯 생생하게 기억된다. 온통 희색 천지의 세상, 꼿꼿하게 선 자작나무들의 장엄함, 저녁 무렵 해가 어둑어둑한데도 비추어진 광채, 황홀함이 온몸을 휘감은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작나무는 추운 지방에서 자라기 때문에 러시아는 물론이고 핀란드와 같은 북구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사우나로 유명한 핀란드에서는 자작나무 줄기와 잎으로 다발을 만들어 사우나에서 몸을 두드려 혈액순환을 돕게 한다. 핀란드의 자작나무는 어느 껌 제품의 ‘자일리톨’ 원료로도 많이 알려졌다. ‘자일리톨’은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 감미료를 말하는데 자작나무에서만 추출하는 것이 아니고 떡갈나무나 옥수수 같은 식물에서도 채취한다. 자작나무는 수액이 많이 흐르는 나무이기에 줄기에 상처를 내고 그 수액을 받아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고로쇠액을 추출하여 마시듯이 북쪽 지방에서는 자작나무의 수액을 추출해 마시면 무병장수한다 하여 인기가 있다고 한다. 앞서 멋진 자작나무의 경관을 설명했듯이 자작나무는 한그루씩 서 있는 것보다는 대규모로 숲을 이루어야 그 멋이 제격이다.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표현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유난이 흰색을 좋아하는 성향이 우리 민족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지 자작나무도 우리나라 국민이 꽤 선호하는 나무이다. 우리나라에도 백두산을 비롯하여 북쪽에 자작나무 원시림이 자라고 있다. 원래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이기에 남한에는 자생하는 자작나무는 없고 모두 심어서 가꾼 나무라고 보면 된다. 자작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하고 넓은 잎을 가진 나무이다. 높이도 커 대개 20m 정도로 자란다.

 

자작나무 하면 그 흰 색깔의 나무껍질이 유명하다. 기름기가 덮여 있어 불에도 잘 타고 종이처럼 잘 벗겨진다. 자작나무 껍질에 기름기가 있어 불에 태우면 자작자작하고 잘 타서 자작나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데 이는 근거가 없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기름이 나 양초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 자작나무 껍질을 이용해 불을 밝혀서 ‘화촉(華燭)을 밝힌다’라는 ‘화’자가 자작나무를 뜻한다고 한다. 한때 이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 연애편지를 쓰면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자작나무 껍질에 편지 쓰는 것이 유행했던 낭만적이었을 때도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지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부처의 모습을 그리거나 불경을 적어 후세까지 전했다고 한다. 경주 천마총에서 발굴된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어 그 오랜 세월 흙 속에 파묻혔는데도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것이 놀랍기만 하다.

 

자작나무 껍질은 약재로도 쓰여 차처럼 달여 마시면 이뇨나 진통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자작나무는 목질이 단단하여 건축이나 조각에 많이 썼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목판도 일부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멋진 자작나무 숲을 볼만한 곳이 있다. 강원도 인제의 원대리 자작나무는 그중 가장 많이 이름이 난 곳이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1970년대 조림을 하여 약 70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신원섭 라파엘 교수

(충북대 산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