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갑 시인 / 쿠바 시편 2 - 아바나의 파도
쿠바를 떠날 때가 되자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분다 빨리 가라는 것인지 가지 말라는 것인지 밤중에 듣는 거센 바람소리는 천둥소리를 닮았다 말레꼰 해변이 훤히 보이는 호텔 창가에 앉아 밤늦도록 요동치는 바다를 바라본다 체 게바라가 부상당한 채 싸우는 모습이 언뜻 보인다 첫새벽 해변으로 나가 방파제에 부딪쳐 거칠게 솟구치는 파도를 맞는다 천둥소리는 번개나 바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파도에도 천둥이 들어있어 허공을 울리며 솟구친 파도가 방파제 넘어 혁명군처럼 거리로 쏟아진다 진군나팔소리, 게바라의 팔뚝과 움켜쥔 주먹 혁명은 끝나고 지금은 여명의 시간 아직도 가난한 쿠바의 거리가 파도에 흔들리며 어둠 속에서 간신히 깨어나고 있다
- 《호서문학≫ 2018년 여름호
홍순갑 시인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41 -아내의 미소
아내는 늘 웃는다 다시 보니 젊던 시절의 웃음보다 훨 씬 더 곱다 왜 웃느냐고 물으면 웃어야 편하단다 아내는 집안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웃는다 아들 셋을 군에 보낼 때에도 웃었다 아내의 웃음 속에는 울음보다 더 깊은 삶 의 고통이 배어 있다 눈꼬리와 콧잔등에 주름살이 인다
치매로 아무 것도 모르는 아버지는 한가지만 생각하신 다 매일 가방에 헌 옷가지를 꾸려 고향 집으로 가자고 조 르면 아내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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