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혜 시인 / 꽃처럼
투명한 햇살이 살포시 떨어져 가슴에 안기는 날엔 나는 향수 같은 한 송이 꽃인 양 꽃처럼 예쁘게 서고 싶다.
바람이 갈래갈래 찢어져 가슴 시리도록 파고드는 날엔 나는 한 잎 두 잎 다 떨어지고 마는 꽃처럼 서글픈 이별을 예감한다.
파드닥 파드닥 뜰 안에 오가던 철새들이 없는 날엔 나는 소리 없이 온몸 삭이며 씨앗 떨구는 꽃처럼 그냥 그렇게 초연히 가야겠다.
조덕혜 시인 / 관조꽃
개나리 진달래며 복사꽃 할미꽃 장미꽃 산야에 핀 잘 뵈지 않는 앙증스런 야생화도 그렇다 세상의 기쁨인 무수한 꽃들 모두 흙에서 태어나 나와 함께 흙에서 살다 흙으로 가는 한 생
나는 무슨 꽃으로 피다 가련 지 삶을 관조하리라 했거니 어서 관조하는 꽃을 활짝 피워야 하리 너른 신작로 뒤안길 덩그맣게 모난 돌에도 풀 한 포기에도 빈틈없이 여명이 내리듯 내 안에도 미세한 물조리개로 청수를 줘야 하리 오롯이, 관조꽃을 피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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