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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덕혜 시인 / 꽃처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3. 21.

조덕혜 시인 / 꽃처럼

 

 

투명한 햇살이 살포시

떨어져 가슴에 안기는 날엔

나는 향수 같은 한 송이 꽃인 양

꽃처럼

예쁘게 서고 싶다.

 

바람이 갈래갈래 찢어져

가슴 시리도록 파고드는 날엔

나는 한 잎 두 잎 다 떨어지고 마는

꽃처럼

서글픈 이별을 예감한다.

 

파드닥 파드닥

뜰 안에 오가던 철새들이 없는 날엔

나는 소리 없이 온몸 삭이며 씨앗 떨구는

꽃처럼

그냥 그렇게 초연히 가야겠다.

 

 


 

 

조덕혜 시인 / 관조꽃

 

 

개나리 진달래며

복사꽃 할미꽃 장미꽃

산야에 핀

잘 뵈지 않는 앙증스런 야생화도 그렇다

세상의 기쁨인 무수한 꽃들

모두 흙에서 태어나

나와 함께 흙에서 살다 흙으로 가는 한 생

 

나는 무슨 꽃으로 피다 가련 지

삶을 관조하리라 했거니

어서 관조하는 꽃을 활짝 피워야 하리

너른 신작로 뒤안길 덩그맣게 모난 돌에도

풀 한 포기에도 빈틈없이 여명이 내리듯

내 안에도 미세한 물조리개로 청수를 줘야 하리

오롯이, 관조꽃을 피우기 위해서.

 

 


 

조덕혜 시인

1996년 월간 《문학공간》 신인상, 조병화시인 추천 등단. ​시집으로 『비밀한 고독』 등이 있음. 월간문학공간 본상, 세계문화예술 대상,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작가상, 경기도문학상 본상 수상. 현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문화예술연대 부이사장,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상임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셋〉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