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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전주호 시인 / 낚시법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3. 31.

전주호 시인 / 낚시법

 

 

낚시꾼은 낚싯대로 물고기를 낚고,

강태공은 미늘 없는 낚시로 세월을 낚는다는데,

91세 노모의 낚시법은?

 

-얘야, 냉장고에 김치가 잔뜩 헌디 토요일에 바쁜감?

-엄마, 도시 사람들은 주말이 더 바빠요.

-도시 사람들이 시골 사람보담 더 바쁘겄제? 암, 바뻐야 좋은거랴….

 

어머니, 아들집 안산에서

고향집 부여에 혼자 내려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김치를 떡밥 삼아 찌에 매달고

속을 알 수 없는 자식들의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다.

 

한 나절

연신 떡밥을 바꿔 달아보지만

물고기들 꼬리 흔들며

다가올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얘야, 냉장고에 김치가 잔뜩 헌디 토요일에 바쁜감?

-엄마, 도시 사람들은 주말이 더 바쁘다니까요.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선다면 진정한 강태공이 아닌 법.

그녀는 떡밥을 바꿔 든다.

 

-얘야, 들기름 짜놨는디. 토요일에 바쁜감?

-엄마, 도시 사람들은 주말이 더….

-그려. 도시 사람들은 시골사람보담 더 바쁘겄제? 그런디 김치가 다 셔버릴 텐디. 어쩐댜?

 

찌에 기별이 올 때까지

연신 다이얼을 돌려보지만

 

부재중 전화이거나

먼 바다에 있다는 소식이 전해올 뿐,

선뜻 그녀의 외로움을 물어줄 물고기가 없다.

 

 


 

 

전주호 시인 / 밥그릇 이야기

<슬픔과 눈 맞추다>에서

 

 

- 선거 때마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밥그릇이 된다?

 

고 3인 딸아이가 친구들과

학원 과외를 한 적이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단다

그 중 극성스런 엄마 몇몇이

더 잘 가르친다는 선생에게

말도 없이 아이들을 데려 가버린 것이다

 

- 난 말이지

내 밥그릇을 깬 팀 절대로 가르칠 수 없다

학원 선생님은

남은 학생들을 돌려보냈다

팀을 깬 것이 내 딸아이라는 듯 비죽거리며

 

언제부터 아이들이 밥그릇이 되었을까?

내 딸아이는

선생에게 이 빠진 사기그릇에 불과했다

 

사기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세상

 

그러니까 우린 지금,

밥그릇 전쟁 시대에 살고 있는

한낱 이 빠진 그릇이다

 

 


 

전주호 시인

충남 부여에서 출생. 1999년 《심상》 신인상과 200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학습지공장의 민자〉 당선. 시집으로 『슬픔과 눈 맞추다』(고요아침, 2006)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