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호 시인 / 낚시법
낚시꾼은 낚싯대로 물고기를 낚고, 강태공은 미늘 없는 낚시로 세월을 낚는다는데, 91세 노모의 낚시법은?
-얘야, 냉장고에 김치가 잔뜩 헌디 토요일에 바쁜감? -엄마, 도시 사람들은 주말이 더 바빠요. -도시 사람들이 시골 사람보담 더 바쁘겄제? 암, 바뻐야 좋은거랴….
어머니, 아들집 안산에서 고향집 부여에 혼자 내려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김치를 떡밥 삼아 찌에 매달고 속을 알 수 없는 자식들의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다.
한 나절 연신 떡밥을 바꿔 달아보지만 물고기들 꼬리 흔들며 다가올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얘야, 냉장고에 김치가 잔뜩 헌디 토요일에 바쁜감? -엄마, 도시 사람들은 주말이 더 바쁘다니까요.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선다면 진정한 강태공이 아닌 법. 그녀는 떡밥을 바꿔 든다.
-얘야, 들기름 짜놨는디. 토요일에 바쁜감? -엄마, 도시 사람들은 주말이 더…. -그려. 도시 사람들은 시골사람보담 더 바쁘겄제? 그런디 김치가 다 셔버릴 텐디. 어쩐댜?
찌에 기별이 올 때까지 연신 다이얼을 돌려보지만
부재중 전화이거나 먼 바다에 있다는 소식이 전해올 뿐, 선뜻 그녀의 외로움을 물어줄 물고기가 없다.
전주호 시인 / 밥그릇 이야기 <슬픔과 눈 맞추다>에서
- 선거 때마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밥그릇이 된다?
고 3인 딸아이가 친구들과 학원 과외를 한 적이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단다 그 중 극성스런 엄마 몇몇이 더 잘 가르친다는 선생에게 말도 없이 아이들을 데려 가버린 것이다
- 난 말이지 내 밥그릇을 깬 팀 절대로 가르칠 수 없다 학원 선생님은 남은 학생들을 돌려보냈다 팀을 깬 것이 내 딸아이라는 듯 비죽거리며
언제부터 아이들이 밥그릇이 되었을까? 내 딸아이는 선생에게 이 빠진 사기그릇에 불과했다
사기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세상
그러니까 우린 지금, 밥그릇 전쟁 시대에 살고 있는 한낱 이 빠진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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