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승 시인 / 커밍아웃 나의 진짜는 뒤통순가 봐요 당신은 나의 뒤에서 보다 진실해지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얼굴을 맨바닥에 갈아버리고 뒤로 걸을까 봐요 나의 또 다른 진짜는 항문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나의 항문이 도무지 혐오스럽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입술을 뜯어버리고 아껴줘요, 하며 뻐끔뻐끔 항문으로 말할까 봐요 부끄러워요 저처럼 부끄러운 동물을 호주머니 속에 서랍 깊숙이 당신도 잔뜩 가지고 있지요 부끄러운 게 싫어서 부끄러울 때마다 당신은 엽서를 썼다 지웠다 손목을 끊었다 붙였다 백 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도 됐다가 고모할머니도 됐다가······ 부끄러워요? 악수해요 당신의 손은 당신이 찢어버린 첫 페이지 속에 있어요
황병승 시인 / 똥색 혹은 쥐색
불─무당집, 죽은 할머니가 지저분한 손으로 자꾸만 권하는 약과 꽃─타오르는 이마, 할머니가 준 약과를 먹고 항문에 수북이 난 털 새─싫증난 애인의 입술, 처음하는 질문의 얼룩 구름─불거진 문장(文章), 한판 굿을 마치고 벗어 던진 겹버선 집─색색의 지붕들, 죄다 팔레트에 넣고 섞으면 무슨 색일까, 똥색 혹은 쥐색 자동차─괴물들의 난교, 끝에 참 못 만든 핏덩이 그리고 겨울, 나랑 똑같이 생긴 조카의 책가방 속에는 귀를 찢는 클랙슨 소리가 티격태격 얽혀 있었다 뭐 하니, 무덤 만들어, 무덤은 왜, 삼촌 묻어주려고, 추울 텐데, 그럼 따뜻할 줄 알았어! 키스······척척해, 척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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