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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문영하 시인 / 해바라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8.

문영하 시인 / 해바라기

 

 

9월을 향하여 줄곧 달려왔다

 

오로지 한 곬으로만 흐르던

저 불가해한 꽃판이

섶을 지고 불을 건너가는 이글거리던 사랑을 은폐한다

 

닿을 수 없는사랑은 먼 곳에 있고

 

한여름 땡볕에 웃자란 그리움이

담을 넘보던

불새 같던 저 꽃이 단단히 문을 닫는다

 

꽃의 출구는 씨앗, 씨앗에서 또 씨앗으로

몸을 넘기는

삼백 예순 다섯 날 숱한 간절함이 빼곡히 박힌다

 

긴 침잠의 시간, 꿈을 꾼다

 

아를의집*처럼 늘 그 곳에 있는 해바라기

이끼 덮인 우물 있던 집

내 편지는 닿았을까

 

* 고흐의 집

 

『미네르바』2022년 겨울(88)호

 

 


 

 

문영하 시인 / 나의 아버지, 이웃 문신수

 

 

 어렸을 때 주무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자다가 눈을 뜨면 아버지는 책상 앞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글을 쓰곤 하셨다. 겨울밤 창호지 틈으로 스며들던, 앞산의 부엉이 소리가 처연하게 들렸다. 아버지의 글이 내면과 깊이 마주하면서 나온 고통의 산물임을 훗날 알게 되었다.

 

『월간문학』 2022-10월(644)호

 

 


 

문영하 시인

1951년 경남 남해 출생. 2015년《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청동거울』 『오래된 겨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가 있음. 미네르바 시예술 아카데미상 수상. 서울시 초등교사 32년 근무 명예퇴임. 한국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