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남 시인 / 벤치 위의 남자
한 장의 사진이 마음을 벤다 등 떠밀린 그에게 공원 벤치가 가슴을 내준다 얼굴을 감싼 사내 머리 위로 타들어 가는 도화선 채워진 족쇄는 신사임당이나 세종대왕을 요구 자식 학비,사치에 눈먼 아내,공과금 내는 날은 종갓집 제삿날처럼 빠르다 회사가 쏜 직격탄을 맞은 후 눈감고도 읽히는 길을 벗어나 갈 곳을 잃었다 짧았던 시간이 수십 리 길이다 술고래가 눕는다 벤치의 가슴이 관속처럼 편하다 머릿속이 비었다. 어디쯤일까 비둘기와 바람이 그를 깨운다 아이디어 은행이었던 그에게 잘 익은 은행 한 알 머리 위에 떨어진다 반짝! 새길을 가르쳐준 은행 고래가 갑자기 독수리로 비상한다 반전이 있어 살 맛 나는 세상이다
박동남 시인 / 방울새 바람이 들다
소나무 어깨에 걸린 빛 조각들 창을 내놓고 홍시 해가 걸린 감나무 뒤뜰에 키웠다 새끼들 부리가 여물고 타박타박 걸을 즈음 물속에 달을 길어 들며 날며 씻게 한다 구름이랑 별이 창에 그려질 때도 어쩌다 아플 때도 호호 불어 길렀더니 다섯 마리 모두 짝 찾아 날아가고 긴 세월 말없이 빈 둥지 지키다가 기억이 지워지고 거센 바람이 몸에 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발뺌하는 아이들 좋은 일엔 없더니 궂은일엔 장남책임 어미 새가 좁은 방에 갇혔다 아픔보다 배고파 우는 어미 새 음식 냄새 풍기며 제 새끼들 데리고 희희낙락 웃음소리 죽지 않을 만큼 먹이로 버티다가 병이 짙어 명줄을 놓는다 비보!비보! 무지한 불효 가슴에 걸린 채 후회의 울음이 온산에 가득하다 잘하는 일도 심성이 고와야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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