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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권혁수 시인 / 빵나무아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10.

권혁수 시인 / 빵나무아래*

 

 

1.

인터넷 웹사이트에 빵나무아래가 올린 광고가 떴다

 

― 1,700만 원에 나를 팝니다

 

빵나무아래의 몸값은 그녀가 은행에서 융자받은 집값

은행융자 속에 빵나무아래의 집이 있고

집 속에 빵나무아래가 있고

빵나무아래엔 그늘이 있어

그 그늘 지워줄 남자를 찾는 빵나무아래

 

몸의 집을 구하는 빵나무아래

 

2.

인터넷 쇼핑몰에 시인의 얼굴이 해처럼 떠 있다

 

― 시(詩)의 집, 정가 7,000원(회원 10% 할인)

 

빵보다 값싼 시(詩) 쇼핑몰 아래 앉아

시인이 장바구니에 담길 시를 쓰고 있다

뱃속에서 꺼낸 11월의 그늘을

맨발 밑에 깔고

 

* 빵나무아래: 중국 사천성의 한 이혼녀 ID. 은행융자로 무리하게 구입한 집값 1,700 만 원을 갚아주는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인터넷에 공개

 

 


 

 

권혁수 시인 / 지하도 성자

 

 

지하도는 제 몸 안에 계단을 내고 어둠을 걸어 내려가

계단 밑에 엎드렸다 기도한다 하루가 편안하게

엎드려 딱딱하게 굳은 도시의 구두 바닥을

닦아주며

 

사시사철 꽃 피우는 인정의

지하도

그를 디디는 발바닥은 모두 평평하다

그림자조차 그를 디디게 하려고

하늘을 끌어내려 낮은 곳

그늘 속에 길을 내어 주고 있다

 

겨울바람 밑이 아니라 그들이 걷는 겨울 앞에 있다

하늘까지 주름장막 높게 펴놓고

 

밤새

 

 


 

권혁수 시인

강원도 춘천시 출생. 강원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1981년《강원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과 2002년 계간 《미네르바》 시로 등단. 시집으로 『빵나무아래』 『얼룩말자전거』가 있음. 서울문화재단 2009 젊은예술가지원 선정. 2010년 현대시인작품상 수상.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급여조사실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