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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효은 시인 / Sea glass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22.

김효은 시인 / Sea glass

 

 

누군가를 담았던 병

파편의 모양은 바뀌었지만

기원의 색을 잃지 않았다

고래가 삼켰다가 배설하고

불가사리의 죽음이 으깨어져

흔적 없이 사라진 동안에도

녹지 않았다

 

다정하게 품어주던 세계에게

모서리만 조금 떼어줬을 뿐

베고 베이고 찌르고 찔리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서로의 피를

흘리기도 하면서

마시기도 하면서

형형하게 다듬어진

생채기의 조각들

오랜 시간을 건너

여기 해변으로 왔다

 

끓어오르던 노을

차디찬 달빛

파도에 휩쓸려

기억의 모래밭에 당도했다

작디작은 울음들이 옹알이처럼

손바닥 위에 놓여 있다

 

눈동자 속으로

빛과 어둠 열기와 냉기가

동시에 비집고 들어온다

반복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매혹

어떤 끝이

시작된다

 

계간 『시와 징후』 2023년 봄호(창간호) 발표

 

 


 

김효은(金曉垠) 시인

1979년 전남 목포에서 출생,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 2004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2010 계간 《시에》 평론 등단. 저서로는 『아리아드네의 비평』 『비익조의 시학』이 있음.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사이며 웹진 『시인광장』 계간 『시로 여는 세상』 『시와 산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