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만 시인 / 병甁
병은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에 따라 이름이 지어진다. 물이 들어 있으면 물병 술이 들어 있으면 술병 약이 들어 있으면 약병이 된다. 그래서 병은 그 속에 아무것도 없을 때 비로소 자신만의 이름을 갖는다. 병이라는
남재만 시인 / 꽃은 어디에 피는가
얼핏 보면 지천으로 피는 것 같다만 과연 어디에 꽃은 피는가
저 하늘의 별들이 눈길을 주는 곳에 꽃은 피고,
지난 겨울 매섭게 서릿발 치던 곳에 꽃은 핀다.
어느 외로운 이 홀로 찾아와 남몰래 눈물 떨구고 간 자리에 꽃은 피고, 꽃이 피면 어둠도 환해지는 그런 곳에 수줍게 수줍게 꽃은 핀다
남재만 시인 / 造花(조화)
다방엘 갔더니 자그마한 화분에 장미 몇 송이가 빨갛게 피어 있다. 조화를 생화 뺨치게 만들어 놓는 사람들의 솜씨에 감탄하며 꽃잎을 살짝 만져봤다. 그때 내 손끝에 하르르 전해오는 장미의 가녀린 떨림. 아, 그 장미는 조화가 아니라 생화였다. 수줍어 얼굴 빨개진. 미안하다 장미야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진 나도 잘 모르겠다. 장미야 정말 미안하다.
남재만 시인 / 초침소리
한밤중 문득 잠이 깼을 때 재깍재깍 재깍재깍 유난히도 크게 들려오는 벽시계의 초침소리.
아아 벽시계여 시간의 생쥐여 내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넌 자질 않고, 재깍재깍 내 목숨을 갉아먹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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