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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운미 시인 / 상호(商號) 이야기
머리 터져라 굴려봐도 골 때리네 라면군, 우동군 그리고 김밥양의 삼각관계 찐 계란은 누구의 자식일까?(부제) 잔 비어쓰에서 쏙닭쏙닭 나는 말하고 너는 듣고 미치겠다 미치겠다 애먼 신발만 툭툭 터는 너 놀란 만두 하군 생각했다 진짜루 동생인지 몰랐다 버르장머리 고쳐 놓겠다 윽박지르는데 인생 뭐 있어 즐기다… 불쑥 튀어 나온 말 순간, 내 눈 관통해 버린 놈의 눈빛 소주병 휘날리며 태풍은 불어도 오봉은 난다 정류장으로 뒤도 안 돌아 보고 뛰었다 꼴까닭 넘어가고 있을 마누라 위해 야한 밤* 속으로 들어가 고효한 밤, 거룩한 밤을 건너 어둠에 묻힌 밤을 산다 따끈한 캔 커피 가슴에 품고 나는 그대의 삶을 뒤흔들고 싶다 한 방 날릴 말 되뇌며 구우면 뒤집으리행 막차를 탄다
*야한 밤 김옥전 시인의 시 제목에서 따옴 (군밤 파는 포장마차 이름)
노운미 시인 / 전등사 나부상의 전서(傳書) -도편수에게 보내는
아무때나 피고 떨어지지 않지요 꽃은 시기를 알지요
술이 넘치고 웃음이 넘치는 주막이라 해서 연정(戀情)이 넘치는 주모는 아니옵지요 뭇 사내들이 흘리거나, 두고 간 마음을 다 품을 수 없는 노릇이지요 도편수 당신의 사랑, 당신의 것이기에 흐르고 넘치는 것 또한, 내 알바가 아니겠지요
어찌, 사내들은 없는 사랑을 짜내라 하는지 떼쓰는 어린아이와 무에 다른지 웃음을 판다 하여 분명, 실없는 여인네라 생각지 마라 했는데 허투루 들은 탓을 내게 돌리다니 내 떠난 것은, 도편수 당신의 마음을 알았기에 상처 될까 염려한 배려였거늘
그 투명했던 사랑을 처마 밑에 걸어두고 욕보인 당신의 어리석음이 내 몸뚱이, 내 마음이 걸린 것 보다 더, 안타까울 뿐이지요 사백년을 처마 밑, 허울좋은 하눌타리 사랑으로 버텨! 야 하다니요
노운미 시인 / 돌아가는 길
시간들이 빠져나온다 살아 쉼 쉬는, 이제 막 생성된 시간들이 바닥에 흥건하다
이곳의 시간들은 질려. 묻지 마. 날것의 시간들이 춤을 추며 날뛰는 식상한 혐오.
말라비틀어진 시간들도 그리울 때가 있지
우리의 시간은 단절된다 뻗었던 두 손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
너 우리 모두가 정지된다
창문에 걸쳐있는 햇살을 끌어다 바닥에 펼친다 곧, 다시, 당신이,
-시인정신 2012년 겨울호
노운미 시인 / 며느리 몹쓸 것
봄볕 살을 파고드는 가시자외선 낯살을 만들며 성가시게 굴어 머릿수건 고쳐 맸을 뿐인데 꾀부 린다고 눈엣가시 같은 며느리 발뒤축 달걀같다 나무래도 애먼 손자까지 꾸짖지는 마세요
두남두는 것이 아니라 제삿상에 빨리 올리려 그저, 급한 마음에 뜸 들었는지 밥 알 두개를 넣어 본 것뿐이었는데 본데없다 말하는 눈빛에 고추바람 불어 가슴이 매얼음으로 짝짝 달라 붙네요 미 운 정이라도 있어 다행이라며 뒷간의 밑씻개로 준 한줌의 풀 다닥다닥 붙은 잔가시에 혈흔 찍힌 꽃망울 맺혔는데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릴 꽃이 하릴없이 보내야 하는 내 하루하루 황소숨만 절로 새는데요 달아난 식욕에 입맛 당기게 생긴 것이 우듬지 감이라니 참, 조각하늘 머리에 이고 서있는 감나무 바라보는 눈이 시리네요 몹쓸 것, 몹쓸 것 오나가나 몹쓸 것이 며느리라더니 탈항병, 피부병, 두통에 눈까지 침침해져버린
어머니, 어머니 탈항병엔 며느리밥풀을 피부병엔 며느리밑씻개를 어두운 눈, 두통엔 며느리감나무인데 그런데요 어머니 이것이 다 며느리 몹쓸 것이라서요
* 두남두: 잘못을 두둔하다
노운미 시인 / 사막의 아버지
아버지 생의 1/4 읽으면 사막이 떠올라요 어머니를 사막이라 부르는 아버지
고요를 세상 저편으로 밀어 넣는 밤이면 툭툭 불거진 관절들 류머티즘 흰 꽃을 함빡 피워냈지요 와디가 되어버린 당신의 어머니 그 가슴에 묻을 가시풀꽃을
이산가족 찾는 날이면 몸속에 희망을 불어 넣었는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팽팽하게 부푼 당신의 몸은 팽이가 되어 돌다 다시, 젊은 엄마의 아기가 되기도 했지요
류머티즘 푸른꽃대 핏줄이 선명해지도록 바늘로 다리를 찔러대면 이불 호청 위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핏방울 꽃잎들
몸속의 꽃 꺾어 사막으로 달려가는 아버지 당신의 사막, 사라져가는 낙타의 혹 속으로 오오- 아버지, 아버지 나를 밀어 넣어요 아버지의 사막이 되기위해
노운미 시인 / 유령으로 나는 서 있네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길 집으로 가는 길 둥글게 모여 앉은 집들이 두런거리던 그 곳은 누우면 아무데나 내 집이었네 부르면 내 엄마 아버지, 곰살궂지 않아도 나를 사랑하던 언니, 오빠들이 있었네 고샅고샅 더듬거리며 가던 손 끝,
눈이 번쩍 뜨이고 온 통 마을은 빈 집이었네 좁은 틈을 잘도 찾아 앉은 건물들 담은 여전히 선긋고 서서 키만 훌쩍 키워 댓돌 위 신발들은 아직도 보이지 않네 가댁질하던 아이들에게 등판빌려 주고 킥킥거리던 동산은 어디로 이사 갔는지 집들은 소화 안 된 그림자들 토해내고 감때사나운 아파트는 줄지어 서서 창공에 삿대질을 하네 유년의 시간들만 챙겨 야반도주 해 버린고향을 눈앞에서 놓친 것 같아 뼈없이 넋없이 흐물거리고 유년을 잃고 떠나 온 그림자들 속유령으로 나는 서있네 아장아장 걸으며 유년을 턱턱 보관하는 유령이 되어가는 아이들 수많은그림자들 스쳐 지나가는 사이로 위태롭게 서 있는 몸을 지탱하는 지팡이 낯익은 늙은 그림자의주인을 만났네 당신 속에서 어찌, 나왔다며 선머슴처럼 더펄더펄 대던 나를 정신사납다 후리며밖으로 내 몰던 엄마 뉘 집 새댁이냐 묻네 나는 잃어버리고 잊혀 졌네 나를 밟고 지나가는 저들속에 그림자로 나는 서있네
나, 꺾어진 산수(傘壽)에 엄마의 검은 자궁 속으로 들어가네 지난 시간들이 내 검은 자궁으로들어오네 세상에 걸린 탯줄을 잡아 당겨보네
-시집 <유령으로 나는 서 있네> <시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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