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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산 시인 / 메주
부끄러울 것도없는 나이처럼 알몸으로 나뒹구는 저것들 사십 줄 넘어 오십 줄 내일모레인데 아직도 씻기지 않는 가난처럼 여기저기 튕겨나가는 저것들 이제 아쉬울 것 없다고 생각들 때까지 기다리는 일 쯤이야 대수더냐 삶고 또 삭혀 더는 띄우지 않아도 좋을 만큼 곰삭아 풀어지는 날 부끄러울 것 없는 바람 당신에게 돌아가리라
안용산 시인 / 배려 7
끝이다
나무 우듬지 끝이었다 그 끝에 이르러 밀어내고 미는 만큼 당기는 하늘을 보았다
시작이었다
안용산 시인 / 금강여울
금강 방우리에서 보았다.
서로 부딪치는 물살이다.
물살이 부르는 길이었다.
돌마저 돌이 아니라 물이 되고 물고기가 되는 곳.
여울이다.
열두 여울에서 너를 본다.
안용산 시인 / 백수로 놀던 자리마다
넝쿨이 끝도 모르는 끝을 따라 몰려가고 있었다
끝이었다 스스로 백수였다
백수로 놀던 자리마다 어느새 콩꽃이 피었다
-좌도시 25 번째 시집 『저기 도깨비가 간다』에서
안용산 시인 / 전설
언제부터인가 우리 마을엔 비밀을 간직한 산 하나 있어 사람들은 성산이라 하였지 산에 오르면 누구나 꽃을 꺾어 머리에 이고 꽃 이름을 지어야 했지 꽃 이름을 짓지 못하면 피를 토하고 죽는디 그것도 모두 다른 꽃 이름으로 불러야 했기에 마을 사람들 산이 두려워 함부로 오르지 않았지 함부로 오르지 않으므로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아 여름이면 여름 이야기를 만들고 겨울이면 겨울 이야기처럼 든든하게 마을을 감싸고 있었지 그러다 누구도 산을 오르지 않아 아니 오를 사람 없어 비밀이 사라지고 이름이 사라져 그저 만악리 산 일 번지가 되었지 그렇게 산이 무너져 산은 무너져 그 자리에 공장 하나 들어서고 비밀처럼 은밀하게 생수 만들어 서울로 서울로 실려가면서 마을에 남아 있던 늙은이 하나둘 생수를 따라 서둘러 서울로 울먹이며 떠나갔지
-시집 『메나리아리랑』 中에서. 실천문학, 1995년.
안용산 시인 / 민들레.3
시한이 질고 출수록 봄이 따습다 거짓이더라 거짓이더라 참으로 춥고 진겨울 겨울로 보낸 사람 말하지 않는다네 말하지 못해 몸으로 부르르 떠는 어린 민들레 문득 여--- 이 한마디로 기우뚱기우뚱 이 땅의 봄은 이렇게 오고 있구나
-시집 『메나리 아리랑』 ≪실천문학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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