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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서 시인 / 남해에서
통통배가 통통거리며 다시, 바다를 가른다 시퍼런 심장이 포말로 부서지며 점 점 점 결박되어지는 포구에 배들은 시시때때로 오라를 풀고
제 능선을 꺾으며 날아오르는 갈매기 한 쌍의 달아오른 울음 위로 만삭의 달이 뜬다
정박한 빈 배에 가만히 앉아 가뭇없는 네 생각만으로도 출렁거려서 짜 내어도 짜 내어도 푸른 물이 뚜욱, 뚝
내 그리움의 빛깔은 지치지도 않고
고영서 시인 / 단 한권의 생
달 비친 사창사창에 한이 많아 꿈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라나* 해동조선국 승지 조원의 처 이옥봉은 온몸에 시를 감고 죽은 여인 여염의 아낙이 되어 지아비 얼굴을 깍아내리는 일 따위, 시 따위 쓰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술로도 못 고치고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하는 천형을 앓다 산지기의 누명을 벗기는 시 한 수로 내쳐졌으니 파도에 밀려 이 포구, 저 포구를 떠돌다 겹겹의 종이로 떠올랐으니 하나같이 빼어난 구절양장구절양장이 명나라 원로대신의 서가에 그렇게나 소중히도 꽂혀 있었던 것
시퍼런 언어의 작두를 타다 뼈째 썰리는 고통으로 내림굿이 되는 시 씻김굿이 되는 시
고영서 시인 / 다음 생生
분꽃 진자리
연두색 꽃받침 위에 마침표가 하나씩
쭈글쭈글한 손이 그걸 거두어 갑니다
팔랑팔랑 나비가 앞장서고요
고영서 시인 / 목백일홍, 그 꽃잎을
얼마를 견뎌야 저 타오름의 경지에 닿나 이녁 몸피는 화상투성이 맨들맨들 맨발로 올라 낙상하기 좋아라 발등에 손가락이라도 닿을라치면 간지러운 발작에 하르르 각혈하는 그대가 보 인다 어느 먼 옛날 목숨 같은 사랑을 떠나보내고 이 꽃그늘 아래 목 놓아 운 적 있었나 기침의 흔적들로 낭자한 연못 바람도 뜨거운 삼복三伏에 피고 지기를
아득해라, 한 움큼의 꽃잎을 쓸어 가슴에 한 사람을 들여앉히는 일은
고영서 시인 / 母情
망월동 행불자 묘 앞에 손금순 할매 열네 살 아들 면회가 길다 "늘 저 얼굴이여 살았으면 뛸 텐데 뛰어봐라 한번 무량한 놈 엄마 가슴에 못질하고 간 놈" 사진 속 깊이 빨려들었다가 한나절을 실컷 울다가 툭툭 털고 일어선다 "네 뼈는 내 손으로 묻어야지 암"
고영서 시인 / 단 한권의 생
달 비친 사창사창에 한이 많아 꿈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라나* 해동조선국 승지 조원의 처 이옥봉은 온몸에 시를 감고 죽은 여인 여염의 아낙이 되어 지아비 얼굴을 깍아내리는 일 따위, 시 따위 쓰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술로도 못 고치고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하는 천형을 앓다 산지기의 누명을 벗기는 시 한 수로 내쳐졌으니 파도에 밀려 이 포구, 저 포구를 떠돌다 겹겹의 종이로 떠올랐으니 하나같이 빼어난 구절양장구절양장이 명나라 원로대신의 서가에 그렇게나 소중히도 꽂혀 있었던 것
시퍼런 언어의 작두를 타다 뼈째 썰리는 고통으로 내림굿이 되는 시 씻김굿이 되는 시
-시집 <우는화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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