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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만호 시인 / 대나무 숲에서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8. 7.

김만호 시인 / 대나무 숲에서

생의 고비마다 어찌 할 수 없어지면

꽃밭에서 수국을 보고

천천히 걸어

​지난 날 보아둔

​대나무 숲으로 간다

몇가닥 햇빛

​바람이 불어

​간간이 대나무 잎새에

​새겨지고 새겨져

훌쩍 키가 큰 고등학생 같은

​대나무가 되는가

​만지고 만져

​둥글어진 조약돌 같은

​대나무를 만져본다

슈퍼에서 사온

​콜라 뚜껑을 여니

​수만개의 기포가 허공으로 흩어진다

콜라 거품은 그날 제주에서

​본 포말 같았다 반쯤

​바닥에 흘리고 몇모금

입안에 담는다 다시 생으로

​돌아가는 길

​철 지난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김만호 시인 / 지랄 발광

 

 

한바탕의  난장을 벌여볼까

술독을  채워라 주모여

한바탕  빗줄기를  뿌려라 예수여

 

세상이  시끄러우니

세상이  지랄하니

 

발정난 개새끼처럼

발광 하는 세상이여

 

그  미친  빛이

저  사막에서

지랄

발광이니

 

모두다  저  검붉은  빛을 보아라

 

 


 

 

김만호 시인 / 물소리를 듣는다

 

 

물은 졸졸졸 흐르다가 처녀가 아랫도리를 내놓듯이

부끄러워 하다가 세살배기 아이처럼 까르르 웃다가

처음 실연 당한 여자처럼 펑펑 울고,

물을 만진다 물은 간음을 들켜버린 정부처럼

화들짝 놀라며 파문을 그린다 파문은 끝도 없이

종소리처럼 뎅뎅거린다 물은 머리가 깨질 듯

아픈지 이마를 짚고 돌아 눕는다

 

 


 

 

김만호 시인 / 잎새를 떨군 나무 아래에서

 

 

 

푸른 잎새 하나가 툭 떨어졌다

가늘게 떨고 있는 잎새의 잔털에

바람이 스친다

저 세상으로 간 자의

마지막 호흡이리라

하늘을 올려다본다

땅의 이마를 스친

잎새를 주워

바람의 흔적을 찾는다

신의 지문을 읽어야 하리라

서늘한 어깨의 잔등을 짚어본다

웃으며 간 자의 표정을 읽어본다

나무는 5월이란 시간을 받아  

주렁주렁 잎새를 달고 있다

무거웠을 거다

나무는 하나를 버렸지만

나는 모두를 버려야 할 게다

간 자의 마지막 호흡처럼

나무의 떨굼처럼

잎새의 떨림처럼

 

 


 

김만호 시인

1968년생 강원도 영월 출생. 1995년 연세대 독어독문 졸업. 2003년 계간지 시현실 여름호 신인상. 현재 삼한일렉트로닉스 설비사업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