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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규정 시인 / 의사소통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8. 11.

이규정 시인 / 의사소통

 

 

출근길 신호 대기 중

도로 옆에 노란두건 구겨 쓴 할머니가

구부러진 허리 들며 손등을

위 아래로 휘휘 흔든다

손등 가리키는 방향엔

늙은 똥강아지 한 머리가

갈팡질팡 오줌만 지리고 있다

할머니께 다가가면

할머니가 소리치고

도망가려하면

할머니가 손짓하고

똥강아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낑낑대고 있다

이놈아,

위험하니까 더 이상 따라오지 말라니까

손 내저으는 할머니의 속 뜻을

똥강아지는 알아들을 수 없다

 

 


 

 

이규정 시인 / 컵라면증세

-우울증

 

 

유리 식탁에서 컵라면을 먹는다

내가 스프링을 먹고 있다

구부러질 대로 구부러진 스프링의 맛

링의 탈력에 따라 얼굴 화색도 다르다

구불구불 팔다리 구분 없이 뒤엉킨 라면

머리가 어디에 꼬여 있는지 나선형으로 뻗어있어

끝을 찾을 수가 없다

 

끝없이 꼬여 있는 맛

내가 꼬여있는지 나는 모른다

컵라면이 되어 있는 동안은 우울하지가 않다

꼬일대로 같이 꼬여주며 웃어주는

그렇게 치료하는 의사는 없나?

스티로폼 비닐 성분에 갇혀 있다는 것

그것은 내 취향이지

사랑이 다 뭐야

뚜껑을 덮고 종일 중얼거리는 구부러진 맛

면이 촘촘할수록 일품이지

뚜껑이 약하게 덮어져있지만 열지도 않아.

내가 그렇게 나를 가두고 있는지 나는 몰라

구부러진 스프링의 맛

 

처음, 의사에게 우울 증세를 말하였을 때

컵라면 증세라고 첫마디 떼는 순간

킥-웃음을 보이더군!

 

어떤 맛인지 먹어나 보았겠어!

치료한다고 더 구부러뜨려 놓는 말들

컵라면이 되어 내가 나에게 다시

물을 붓고 나를 또 끓여야 할까 봐

 

 


 

 

이규정 시인 / 죽음을 닦아낸 개

 

 

들판에서 쥐약을 먹고 돌아온 개

마루 밑 가장 어두운 곳에 뛰어 들어가

어둠을 펄떡뛰게 만든다

하얗게 뒤집어진 눈

구석이 닳도록 숨을 몰아쉬던 기억

 

입을 벌리고 먹인 비눗물 한 바가지

뱃속에 고였던 죽음

울컥하고 올라왔던 기억

 

구석으로 모이게 했던 눈동자들

비명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두근거리며 박혀있다

 

비눗물 먹고 깨끗해진 개

한동안 으르렁거리며 꺾이지 않았던 그 야성도 닦였는지

온순해졌다

 

술만 먹으면 뒤집어졌던 기억들

아버지에게도 먹이고 싶었던 그 비눗물 한 바가지

 

- <미래시학> 2022, 여름

 

 


 

이규정 시인

1953년 경기도 안성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수료. 201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