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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래 시인 / 엄마처럼
오늘은 생강을 심고 짚을 덮었다 짚이 습기를 주지만 잡초도 막는다 그리고 썪어 거름이 된다
엄마처럼 우리 엄마처럼
-시집 『돼지밥바라기별』에서
임태래 시인 / 촌놈 지하철 타다
복잡한 서울의 지하철은 늘 어리둥절 하게 한다
시골에서 올라온 티를 내지 않으려 조심조심 미로같은 지하철역의 이정표를 살피며 걷는다
행여 길을 잃어도 침착하게 나아간다 아무도 촌놈을 알아볼수 없게다
드디어 지하철에 올라 자리에 바로 앉았다 한참 가다 발밑을 살펴보니 핑크빛 표시의 임산부 자리였다
동시에 앞쪽에 서 있는 아줌마의 아랫배로 눈이 갔다 임신 했냐고 물어 볼 수도 없고 조금 창피했다 일어 나려고 하는데 언뜻 생각이 스쳤다
제가 학창시절 신중하다 해서 별명이 한때 임신중 이었다
오늘은 제가 부끄러운 임신부가 된 날이다
임태래 시인 / 나는 물이다
우리는 걸어 다니는 물주머니다 물주머니끼리 서로 부대끼며 살아간다 우리는 물탱크인 셈이다
어제 마신 커피와 술잔도 탱크에 보충한 물이다 절반 이상 물을 담아야 사는 거니까
물은 단단하지 않지만 부드럽게 스며드는 여유가 있다 무섭기도 해 물은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물주머니끼리 좋아 나눈 사랑도 물이고 가슴 아파 흘리는 눈물도 물이다
그러니 누가 간혹 물로 보더라도 섭섭해 할 일 아니다 실은 딱 맞는 말이니까
임태래 시인 / 아디아포라*
별것도 아닌 것에 우리 목숨 걸지 말기로 해요
생김이 생각이 방식이 모두 다른 건 당연하지요 우리 서로 인정해 주고 조금씩 맞추어 주며 함께 가기로 해요
대수롭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요 사소한 것에 마음 쓰지 말기로 해요
미워하지 말아요 사랑하기도 부족한 시간이어요
컴컴한 밤 푸르게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철마다 찾아오는 꽃을 만나고
세상에서 당신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까요
* 아디아포라: 해도 좋고 안 해도 괜찮은 것으로 대수롭지 않다는 뜻의 헬라어.
임태래 시인 / 사랑의 줄
사촌 큰형님이 떠나시며 부르신 날입니다 낙엽 따라 가셨나 봅니다. 아버지와 닮아 형님이라기 보다 삼촌같은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늦가을 가족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세상에 흩어져 그간 많이 변했지만
우리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별의 아픔보다 해후에 반가운 마음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진즉 왜 모이지 못한것 후회가 됩니다.
당신이 남기고 가신 집안의 흔적 땀방울 흘리신 논과 밭 걷던 길 지금도 어디선가 당신의 음성이 들릴듯 합니다.
꽃이 지고 잎도 지지만 열매는 맺고 씨앗을 품듯이 형님은 가셨지만
우리 가슴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당신의 사랑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제야 우리 모두를 사랑의 줄로 연결시키고 매신분이 당신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젠 평안히 안식 하소서
임태래 시인 / 사막여우가 사는 사막에는
삭막한 사막이 아름다울 수가 있다 누군가가 걸으며 고통의 짐을 모래 위에 풀어 놓고 어딘가에 있을 오아시스를 꿈꾸었으리니
사막에 귀가 큰 여우 귀여운 사막여우가 산다 귀가 큰 것은 땅속의 작은 소리도 들으라는 것이며 서로 사랑하라는 말도 듣지 못하는 이를 위해 사막여우가 사막에 산다
사막의 모래가 많은 것은 모래 수만큼 참아 보라는 거고 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사랑을 해보라는 것이다
사막의 밤낮이 다른 것은 시린 밤은 낮의 뜨거운 때를 불타는 낮에는 아리도록 시린 아픈 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사막의 밤하늘을 보았는가 파란 하늘도 암흑에 갇혀야 반짝이는 별들이 지켜주고 있음을 안다 희망이 내리는 밤바다에 누워 기쁨의 눈물을 흘려라 아름다운 그 사막위에
사막에 피는 꽃을 보았는가 빗물 한 방울 내려주지 않아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을 피우지 바람과 모래 별빛들은 사막의 어둠에서도 서로 사랑하면서 말이야
사막에 여우가 사는 것은 사막이 삭막하지 않음을
귀여운 여우가 살고 있음은 사막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사막여우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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