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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시인 / 서시
나의 별은 바다로 이루어졌습니다 둘레를 십분이면 산책할 수 있는 섬이 전부입니다
손 닿을 듯한 수평선 배를 타고 떠나도 하루 만에 돌아옵니다
사철 피어 있는 해당화는 집으로 밀려드는 파도를 막아주고 모래가 쓸려가지 않게 꼭 잡아줍니다
해오름과 해 내릴 때 몇 점 뭉게구름이 붉은 노을을 부드럽게 감싸는 곳입니다
밤이면 은하수 따라 흘러가는 별들과 별빛을 서치라이트 삼아 깜박깜박 이야기 나눕니다
달빛을 덮고 잠을 청하면 가슴 젖게 하는 모든 것이 바다로 흐르는 별. 나의 모든 걸 키워주는 별에서 글을 남깁니다
이기영 시인 / 이별, 별들이 부르는 노래
나는 들국화의 이름으로 살고 싶다
꽃잎 흔드는 바람에 눕지 않고 가랑잎 구르는 소리 귀 기울여 떠나는 모든 것을 초월하여도 늦가을 한 폭 슬픔만은 간직할 한 송이
계절의 틈을 자연스레 이어주리 별빛으로 검버섯 덧칠하고 이별, 별들의 노래를 부르다
밤에 기대지는 그 이름으로 살고 싶다
-시집 <몸으로 우는 것들은 원을 그린다>에서
이기영 시인 / 바람꽃
언덕 양지에서 피었지 꽃샘추위로 이름 바꾸는 건 그때부터였고 햇살도 유난히 부드러웠지
낮게 피어도 아름다운 건 마른 들녘 살 붙이려 바람과 타협하며 한 발 떼기 두려운 봄을 손잡고 이끄니까
잔설보다 더 하얀, 자그마한 몸으로
-시집 <몸으로 우는 것들은 원을 그린다> 중에서
이기영 시인 / 메밀꽃은 다시 핀다
메밀이 달빛 속에 내민 꽃은 흉터였다
잔설 남은 밭에서 하양 하양 날갯짓하던 나비는 꽃을 기억하고 날개를 접는다
베옷 저고리가 땀띠 난 살에 닿자 쓰라렸던 사람들도 산을 닮아 원망을 모르는지
나귀의 방울 소리 들릴 것 같은 씨를 뿌린다
기억과 기다림의 시간을 희부옇게 가렸던 꽃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한다
-시집 <몸으로 우는 것들은 원을 그린다> 중에서
이기영 시인 / 휴식
해변에 발자국 찍는 바닷새 아니었다면 물결 업힐 듯 떠가는 배 아니었다면
수평선 넘지 않으려 눈물짓는 사람 아니라면
등대도 불빛 거두고 쉴 수 있었을 텐데
-시집 <몸으로 우는 것들은 원을 그린다>에서
이기영 시인 / 별무리 지는 사연
별들도 다른 별들을 부러워하거나 미워한데 자신보다 크고 밝거나 더 고운 빛깔이라 느낄 때겠지 별빛으로 빙 둘러 담을 쌓고 서로 외면하면 사람들은 별무리 진다 하지 별들은 미움을 오래 지니지 못한 채 곧 그리워하며 눈물 흘린데 별무리 지는 밤 다음날 비 내리자나
-시집 <몸으로 우는 것들은 원을 그린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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