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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아 시인 / 본색·2
에구머니나!
교양 없고 욕심 많고 포악하고 인정머리 없고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욕하고 심술궂고 더럽고 냄새나고 게으르고 무식하고 뚱뚱하고 아무데서나 방구 뀌고 트림하고 밥상에서 손가락으로 음식 집어 먹고 옷에다 손 닦고 이쑤시개로 이 쑤시다 아무데나 퉤하고 뱉어내고 양치 않고 머리 안 감고 안 빗고 옷 안 갈아입고 매력 없고 지저분하고 생선을 신발장에 숨겨두고 며느리한테 밥도 안주는 몹쓸년이라 욕하고 오물 닦은 휴지를 슬그머니 어느 구석에 쑤셔 넣고 아들보고 누구냐 하고 남편보고 아들찾아달라하고 여자만 보면 남편이랑 바람났다고 머리채 잡아채고 두들겨 패며 패악하고 방안의 물건을 발로 슥슥 밀어 구석으로 보내고 오줌 싸고 똥 싼 줄도 모르고 이불에다 발닦고 식탐많아 먹던 음식 남몰래 숨겨두고
못먹고 못 배우고 살아 늘 결핍에 시달렸던 과거로부터 도망치느라 포장용으로 쓰고 있었던 페르소나가 벗겨졌네
시인이라며 교양있게 살았다는 나는 어디로 갔나?
전영아 시인 / 발자국
이른 새벽 새 한마리 쪼르르 눈 쌓인 산길을 넘어갔다 작은 새 발자국 능선을 넘어 길고 긴 순례의 길을 걸어갔다 발자국을 따라가며 새발자국 화석을 생각한다 눈 위를 맨발로 걸어간 꽁꽁 얼어붙은 발자국에는 비린 살냄새와 가냘픈 심장소리 새는 잠시 고단한 날개를 접고 적막한 눈 산을 콩콩 뛰며 발도장을 찍어보고 젖은 날개를 퍼덕였을 것이다 이른 산에 올라 먹이를 찾는 새의 눈빛과 배고픈 울음소리를 생각한다 반짝이는 은빛 발자국 옆에 누워 눈옷을 입고 날아가는 새의 모습을 찾아본다
전영아 시인 / 꽃을보는여자
시간이 흘러도 여자는 꽃을 떠나지 않는다 꽃속에서향기를 부른다 두근거리며 다가오는지난 시절의 봄 꽃봉오리 열어보며가슴을 열곤 한다 이슬과 햇볕이 바람과어우러지면 가슴을 울리고 웃어도 보며 기억이란바람을 탄다 잠겨있던 가슴마다 과거란 길이 열린다 시간을 향기로 되바꾸고 싶은여자 꽃 한 송이 꽃밭을 오간다 살아갈 수록 꽃뿌리 부여잡고 꽃으로 남고 싶어한다 언젠가는 시들어 향기를잃고 메마른 꽃잎마저 비로 적셔지면 퇴비처럼 마감해야 함을 알면서도 꽃을 바라본다 꽃을 성숙시켜 온 이슬꽃을 본다
전영아 시인 / 스마일 증후군
하루를 시작하기 전 밀폐시킨 나를 암송하듯 읊조린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안녕 현관문 사이로 짧은 인사 하나 던져준다. 마트 매장에 들어서기 전 차곡차곡 벗긴 나를 확인한다. 오목하게 파놓은 초승달 안으로 들어가 어떤 표정이 기쁨을 부르는지 입술이 얼얼해지도록 웃음을 만들어본다. 때론 험한 가시가 찔릴 때가 있다. 온몸이 통증에 괴로워해도 구십도 각도로 구부린 허리로 막아내야 한다. 혹여 어둠이 목구멍을 넘어 오기라도 하면 벌처럼 쏘아대는 김 과장의 훈계를 조아린 머리로 맛있게 받아먹어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손님께서 주신 모욕과 퉁명스러운 말씀도 꽃 장식 붙인 선물 상자처럼 정성스럽고 예쁘게 꾸며서 되돌려주는 것 그 길만이 내가 살 길이다. 포장을 하며 잠시 세상의 일면을 엿보고 미래를 대응하는 법을 배운다. 내가 견딘 만큼 연애하던 어둠도 이겨낼 수 있다는 걸 나를 내동댕이치던 바닥에게 배웠다. 풍선처럼 부푸는 웃음병에 걸린 나로 인해 노모와 아이의 겨울이 따뜻할 수 있다면 나를 방황시키던불치병 하나를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을 거 같다. 퇴근하는 밤, 어둠이 내 몸을 묶기 시작하면 웃음 한 움큼 보약처럼 먹여준다.
전영아 시인 / 다뉴세문경多紐細紋鏡
동심원 둥근 태양의 무늬를 등에 지고 깊고 어두운 터널을 건너왔어요 수천 년 전, 암석에 기원했던 겹겹의 무량한 주술이 내 몸에 새겨진 줄 까맣게 몰랐어요
세속과 신성의 경계 사이를 주제하는 제사장의 권위였던 생을 지나 태양계만큼 넓고 긴 시‧공간을 지나 몇 겁의 전생과 전생을 지나 빗살무늬 기하학적 세문이 새겨진 청동거울의 기억을 지닌 채 파경 되지 않은 온전한 명경으로 환생했어요
세상의 모든 것이 거꾸로 읽히는 나는 나를 관통하여 다른 세상을 다녀오는 당신을 볼 때마다 당신의 진심까지 곡해할까 두려워요 텅 비어 공허한 내 연민을 당신은 알 리 없고 당신의 뒤꿈치를 붙잡을 방법이 없어 쓸쓸하고 쓸쓸해요 내 존재의 의미를, 그 주술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나는 내세의 동굴 벽에 당신을 묶어두고 싶어 자주 청동의 얼굴을 반짝반짝 닦아요
2017년 제2회《직장인 신춘문예》가작수상작
전영아 시인 / 열하일기
벽이 열렸다 닫히고 나는 열대에 들어왔다 투명한 저 벽을 경계로 온대와 열대가 극명하게 구분된다 먼저 온 누군가가 엎어 논 달구어진 사막을 내가 다시 뒤집어 엎어놓는다 여기는 지금 극한의 건기 구름이 낮게 깔리고 하늘이 가까워지기를 기다리 듯 더위 속에서 우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몸이 된다 데스벨리나 칼라하리 사하라 아니면 타클라마칸 그 어디쯤일 것이다 여우와 전갈의 사막이 펼쳐지고 바람과 시간이 만들어 놓은 물결 같은 모래의 길을 따라 길을 잃고 미라가 된 누군가의 애타는 손길도 터번을 쓴 대상의 낙타가 가시풀을 씹어 제 피를 삼켜야하는 불가해한 목마름의 문제도 여기 있다 지금은 양머리를 덮어 쓴 채 호흡을 조절해야 하는 전전긍긍의 시간 어디서 왔는지 핫팬츠가 냉커피로 호객 행위를 한다 이 건기의 열대에선 뿌리치기 힘든 유혹 그사이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열하에서 사막은 두어 번 더 거꾸로 뒤집혀 내려 쌓이고 숨을 헐떡이며 이 열대에 들어온 이유를 곰곰 생각중이다 벽이 열렸다 닫히고 또 다른 양머리가 열대로 들어온다 짧은 순간 사바나의 바람이 뒤따라 들어왔다 갇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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